나는 이야기 한국사 중에서 광개토대왕쪽을 읽었다. 고구려 제19대 임금인 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나 광개토대왕이 왕이 되기 전의 이름은 담덕이었다. 나는 광개토대왕이 왕이 되기전 이름이 담덕이었다는걸 지금알게되었다. 어린 담덕은 호랑이를 활로 쏘아 잡을 만큼 용맹스러웠다고 한다. 담덕은 12때 태자로 책봉이되었다.그리고 391년18세에 왕위에 올랐다.371년 고국원왕41년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3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해 왔는데, 이 때 고국원왕은 앞장서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385년 11월, 고구려는 후연의 반격을 받아 요동성에서 후퇴하였다. 담덕은 할아버지가 당한 고구려의 수치스러움을 씻어내기 위해서 열심히 무술을 갈고 닦았다. 391년5월, 고국양왕이 세상을 떠나자 담덕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광개토대왕으로 담덕은 18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광개토대왕으 영락이라는 연호를 정하여 사용하개 함으로써 고구려가 어엿한 독립 국가임을 내세웠다. 그래서 백성들은 광개토대왕을 영락 대왕, 호태왕이라고 불렀다. 392년7월, 광개토대왕은 4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하북의 백제성 10여 곳을 함락했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20여 년 만에 거둔 대승리였다. 그 해 10월에는 백제의 관미성도 20일 만에 함락시켜서, 고구려는 백제 북방의 주요 요새를 모두 빼앗았다. 광개토대왕은 그 뒤 백제가 침입 때마다 격퇴시키고, 남쪽 국경선에 7개의 성을 쌓았다. 이어서 북쪽으로 눈을 돌린 광개토대왕은 395년12월, 북쪽 변방을 괴롭히는 비려라는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3천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나가 곳곳에서 적을 무찌르며 진격한 고구려군이 소화강 유역에 이르렀을 때는 6개월도 더 지났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은 눈앞에 보이는 비려성을 함락시키고 귀국하였다. 이무렵,백제를에서는 진사왕이 물러나고 아신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수군을 앞세운 광개토대왕은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 고구려군은 한강을 넘어 백제의 서울 위레성을 포위해 버렸다. 백제의 아신왕은 396년 성 밖으로 나와서 스스로 항복을했다. 광개토대왕은 아신왕을 살려주고, 그의 동생과 대신10명을 볼모로 붙잡아 고구려로 돌아왔는데, 이 때 고구려는 백제의 58개 성을 정복했다. 아신왕은 일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 고루려를 공격할려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고구려군이 왜구를 전멸시켰다는 말을 듣고 백제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402년 광개토대왕은 6만대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 순구성을 향해 만주 벌판으로 진군하였다. 고구려가 쳐들어가자 모용귀는 패하여 북문으로 달아났다. 숙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성주들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 고구려군은 현도성과 요동성도 쉽게 차지하였다. 광개토대왕이 동부여를 정벌하기로 하자 동부여의왕은 항복했다. 광개토대왕은 숙신족까지 정벌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구려군들은 그들을 닥치는 대로 무찔렀다. 부상을 입은 족장들은 항복했다. 동부여와 숙신족을 정벌한 광개토대왕은 국내성으로 돌아갔다.만주의 드넓은 땅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후 광개토대왕은 40세인413년에 세상을떠났다. 나는 광개토대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왜냐하면 여러 나라를 침략했기때문이다. 근데 광개토대왕이 욕심이 너무과하다고 생각된다.초등학교때 조금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야기한국사를 읽고 알게되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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