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속이 상하다. 정말 이 사회를 부정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만나 힘없이 주저앉은 어깨를 들어주고 싶다. 난 이 책의 「성장」이라는 부분만을 독후감으로 쓰려 한다. 사실 시간상으로도 다 읽는 건 힘들지만 더 이상 읽으면 짜증이 날 것 같다. 짜증? 읽는 그 자체가 짜증난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다는 것의 기준을 훨씬 넘어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나에게 더 이상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나는 것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성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활을 창진이네 가족 생활을 보여주며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주인공인 ‘나’가 아버지에서 창진이로 변해가는 그 동안의 창진이의 성장이 이 책의 제목을 표현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 힘든 대가는 좀더 나은 삶이 아니 더 힘겨운 고통만을 안겨주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건 그들의 잘못이, 그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 것이다. 완주댁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세상은 당신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그렇다. 시련을 넘고 나면 또 시련이 있는 이 사회가 문제다. 아버지는 창진이가 삶의 희망이자 목표이다. 이유없이 경찰서에 잡혀가 매를 맞아도, 마누라가 하루 번 돈을 모두 뺏겨, 속이 상해 경찰서로 달려가 ‘정의와 진실’ 앞에 대응을 하다 순화교육까지 다녀와도 그는 결코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에겐 창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창진이는 아버지의 희망을 등지고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걷고 있다. 결코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선택한 삶이었으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창진이가 벽돌공장에 가던 그날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숨이 나온다.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희망을 잃은 채 죽음을 택하였다. 모두 그를 비겁하다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난 그를 이해하고 싶다. 아니 이해한다. 아마도 그에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니깐. 이 사회가, 그들의 가족이 그를 그 길로 인도한 것이다. 아버지의 유서를 읽으며 난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의 눈물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다. 어머니인 완주댁은 그녀의 불쌍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들이 삶의 희망이자 목표였다. 남편이 그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과 손지검을 하여도 그녀는 결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장에 서기를 꺼려하지 않았고 그를 더욱 사랑으로 감싸려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건 그녀가 남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희망이었기에, 심한 매에 참지 못해 이집저집 가정부일을 하던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부자집에서 더 많은 고통을 느꼈을 것 같다. 완주댁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은 그들을 보며 그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자신의 희망인 남편의 죽음을 알고도 그녀가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아직까진 그녀에게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있어 희망이던 창진이 자신을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그를 원망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창진이가 난 너무나도 밉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큰 원인은 이 사회였으나 창진이도 원인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격렬히 반항하며 “이 @@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넌 애비도 @도 아냐.” 하는 말을 한다. 내겐 정말 충격이었다. 아마도 창진이는 이런 가난한 모든 삶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인가 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창진이는 그렇게 성장해나갔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말이다. 아버지의 인생을 비관하며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학교를 포기한 채 사회에 발을 디디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방법이 틀리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 창진인 공부를 하려 했으나 이 사회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산다는 걸 안 창진인 아버지가 그토록 의지했던 술을 처음으로 마신다.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술취한 창진이의 모습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창진이가 사장 즉 관리자와 맞서는 장면은 정말 노동자와 관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이 사회의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너무 나약했다. 불평불만만 많을 뿐,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나서서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말해주기만을 기다릴 뿐. 그들의 대변인이 창진이었다. 창진이가 당당히 맞설 때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는 동료들을 보며 정말 속이 상했다. 아무리 옳은 일도 혼자의 힘으론 될 수 없듯 그렇게 전과 같아졌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지키고 우리를 위한 사회,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모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조직된 힘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느꼈고, 그도 느꼈을 것이다. 그동안 그의 가족을 무겁게 짓눌렀던 마을의 철거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이사를 재촉했으나 창진인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이사를 하면 자신이 아니 그들이 진다고 생각해서일까? 결국 그들은 이사를 한다. 그건 패배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일 것이다. 함박눈이 내리고, 눈속에 아버지의 눈물이 웃음으로 온 천지를 덮고 있는 것을 보는 창진이의 모습. 그들은 그렇게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제껏 그의 가난과 그의 생활과 그의 역사가 잘 가라고 인사하는 듯한 구로공단의 웅웅대는 기계 소리를 들으며 하얗게 뒤덮인 둑길을 달린다. 정말 이 책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진지한 책인 것 같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해서 나를 답답하게 만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 많은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준 것 같다. 이 사회는 명백히 드러나게 두 가지의 형태로 분류되어 있는 것 같다. 억압받는 가난한 자. 돈과 권력으로 억압하는 부자인 자. 언제나 한쪽에선 일을 안해도 대대손손 몇 십억씩 쓰고 게다가 걱정이라곤 고작 그 돈이 도둑맞을까봐 하는 것이고, 또다른 한 쪽에선 등이 굽도록 일을 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 사회는 정말 모순투성이다. 이런 사회는 아마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모순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돈과 권력으로 인간을 조롱하는 이 삐뚤어진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너와 나이다. 올바른 일에 조직된 단결로 대응할 때 아마도 이 사회는 바로 잡힐 것이다. 그땐 아마 창진이도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굽은 등을 꼿꼿이 펴며 힘차고 밝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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