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한국사(韓國史) |
|||||
---|---|---|---|---|---|
이름 | 서영식 | 등록일 | 11.06.22 | 조회수 | 191 |
농구가 처음 시작된 것은 95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 주(州) 스프링필드의 YMCA 지도자 네이 스미드에 의해서였다. 체육관의 벽에 굵은 철사로 동그라미 쇠를 걸고 축구공을 던져 넣게끔 돼 있었는데, 골인 여부가 확실치 않아 경기 중에 싸움이 잦았기로 이웃 농장에 가서 복숭아 담는 바구니를 대신 벽에 걸었던 것이다. 골인하면 그 공을 꺼내야 했기로 심판이 사다리 타고 올라서 있으면서 공을 꺼내주곤 했다 하니 퍽 목가적(牧歌的)이다. 이 농구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그 16년 후로 황성(皇城)YMCA 총무였던 길레트에 의해서였다. 당시 <청년잡지>의 농구평을 보면 “중심(센터)을 잘 보던 김수일(金壽一)군은 참 먼 데에서도 구멍을 잘도 찾아 넣는 도다. 좌익(左翼)인 김주호(金周鎬) 군은 운동중에 관람자의 쾌감을 잘 주며 상대편 볼을 뺏는 데 도사일러라” 했으니 이 농구평 역시 목가적이었다. 동그라미 쇠에 공을 집어넣는 것이 농구라면, 우리나라에는 백제(百濟)시대부터 농구가 있었다. 중국 문헌인 <북사(北史)>에 보면 백제에 농구가 아니라 농주(弄珠)라는 유희가 있다 했고, 최치원(崔致遠)의 향락오기(鄕樂五技)를 읊은 시에는 ‘농환(弄丸)’이라 적혀 있다. 노는 방법은 적혀 있지 않으나 당시 중국의 유사한 유희를 보면 자그마한 공을 여러 개 공중에 띄워 번갈아 받아가며 이따금 공중에 매어 단 동그란 테 속에 넣어 받곤 했던 것 같다. 역시 삼국시대 이래의 우리 전통적 유희인 투호(投壺)도 그렇다. 농구가 공을 수직으로 던져 바구니에 넣는 경기라면 투호는 화살을 수평으로 던져 단지 속에 넣는 다는 차이 밖에 없는 것이다. 역시 백제․고구려 때부터 성행했던 이 투호는 궁중에서부터 여염에 이르기까지, 또 남녀 없이 즐겼던 가장 민주적인 놀이였다. 한말에는 민비(閔妃)가 상궁들과 더불어 투호를 즐겼다 하며, 첩(妾)을 걸고 투호를 했다는 악습이 한말 신문에 보도되고도 있다. 우리 전통 스포츠인 격구(擊毬)는 요즈음 하키랄 수 있으나 단오날에 놀던 격구는 경기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두 기둥을 높이 세우고 그 위에 공이 빠져나올 만한 구멍 뚫은 판자를 얹는다. 그 구멍 아래 망주머니를 걸고서 공을 서로 빼앗아 이 구멍 속에 넣는 자를 승자로 쳤다 하니 요즈음 농구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세계 스포츠 사(史)에서 스포츠 종목을 독창적으로 많이 발명한 10대 국가 중에 우리가 끼인다는데 농구 하나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이 장대 같은 중공(中共)선수와 맞대어 그렇게 잘 싸웠는지 모른다. 권투에서 중량급을 가르듯이 농구에서도 신장급(身長級)을 가르기만 하면... 하는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 |
이전글 | 농구 - 3점슛의 과학 |
---|---|
다음글 | 뉴스포츠 <플로어볼>수업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