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칭
: 가온누리 ('세상의 중심에 서다' 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2. 목적
: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기위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탐구한다.
3. 활동방향
① 역사탐방을 통한 역사의식 함양
②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통한 사고의 확대
③ 한국사 검정 능력시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한 경험 습득
장희빈의 태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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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상미 | 등록일 | 14.12.17 | 조회수 | 89 |
우리는 0월 0일 토요일 동아리와 함께 장희빈의 태를 찾아서 갔다. 가기 전에 먼저 충주시 소태면 청계산 중턱 청량사지에 위치해 있는 보각국사 정혜원융탑(국보 197호)를 보았습니다. 보각국사는 고려 충숙왕 7년에 태어나 우왕 때 국사가 된 인물이다. 태조 이성계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보각국사가 나이가 들어 이 곳 청계산 중턱에 머무르게 되자, 태조는 큰 사찰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얼마 뒤 청룡사에서 보각국사가 죽자, 태조는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보각이라는 이름을 내렸고 융탑과 탑비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간곳이 장희빈의 태, 즉 경종의 태실이 묻어져 있는 곳으로 갔다. 태지가 무엇인가 하면 예로부터 왕자가 태어나면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태실지(태실터)를 마련해 탯줄을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했다. 목계리 위 엄정면 괴동리에는 경종 대왕 태실비와 태실지가 있는데 숙종 15년 경종 대왕이 탄생한 이듬해에 그 동안 보관해 두었던 탯줄을 도자기에 담아 이 곳에 안치한 것이다. 경종은 숙종과 그의 후궁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숙종의 뒤를 이어 임금에 올랐다. 경종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는 벼슬 아치들이 남인ㆍ서인으로 갈라져 서로 싸웠던 어지러운 시기였다. 당시 경종은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버지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가서 실제로 보니 적당히 높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는 비는 그아래 있는 마을이 확 들어오고 시원하였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명당이라고 하는데 그말씀이 맞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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