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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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 임영택
  • 학생수 : 남 4명 / 여 9명

ㄹ혀

이름 이에녹 등록일 16.10.12 조회수 48

치즈의 역사

치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우유를 운반하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 치즈를 발견했다는 설이다. 위장 부위로 만든 가죽 주머니 안에는 렌넷이 들어 있어 이것이 우유를 응고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 유제품을 섭취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축을 한곳에 모아 사육함과 동시에 여기서 나온 젖을 응고시켜서 나무 그릇에 보관하였는데 고대 동굴의 벽화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치즈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예수가 탄생하기 4000년 전, 수메르인은 우유와 양유로 치즈를 만들어 항아리에 저장해 소비하였고, 기원전 2000년 이집트 무덤의 벽화에는 버터와 치즈를 제조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 제조 기술의 기반을 다진 것은 로마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로마 시대의 치즈 제조업자들은 숙련된 장인들로, 그 당시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것과 유사한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만들어 냈다. 또한 그들은 치즈의 숙성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로마가 갈리아 지역을 정복했을 때 프랑스와 영국으로 치즈 제조 비법이 전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300년 즈음에는 로마의 치즈가 지중해 연안 국가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교역이 활성화되자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는 로마인들이 많이 소비하는 사과향 훈제 치즈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치즈에 대해 최고 가격을 설정하였다. 로마의 치즈 제조 기술은 제국의 확장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병역을 마치고 변방의 주민과 결혼한 로마인들은 식민지에 농장을 세우고 그들만의 치즈 제조 기술을 전수하였다. 이후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치즈 제조 기술은 지중해, 에게 해 및 아드리아 해를 통해 남부 및 중앙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다양한 민족의 이동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치즈 제조 방법 또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이 시대에는 수도사들의 역할이 컸는데, 전쟁 및 전염병으로 인해 대륙 전체가 암흑기를 맞으면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치즈 제조 기술이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수도원에서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치즈는 대부분 수도사들에 의해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치즈가 해로운 식품이라는 인식이 생겨 소비가 감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9세기가 되어서야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였으며, 농장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던 치즈는 이때부터 공장의 대량생산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밀크의 살균법이 발달함으로써 대량생산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치즈가 처음 들어온 것은 약 200년 전으로,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우유를 소비하는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즈의 수요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966년 벨기에에서 온 선교사 지정환 신부가 전북 임실에 치즈를 생산한 것이 우리나라 치즈 생산의 시초다. 그 후 1970년대에 피자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피자용 치즈가 여러 업체에서 생산되었다. 1972년에는 서울우유에서 체더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는 여러 유업체 및 목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치즈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치즈의 역사 (내 미각을 사로잡는 104가지 치즈수첩, 2011. 10. 15., 우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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