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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신라의 삼국통일 과정,발해의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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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문서연 | 등록일 | 15.12.19 | 조회수 | 7 |
첫번째 진흥왕대는 신라가 종전의 미약했던 국가체제를 벗어나 일대 팽창,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때이다. 6세기 진흥왕은 재위 37년 동안 정복적 팽창을 단행하여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 병합하였고, 한강 하류 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동북으로는 함경남도 이원지방에까지 이르렀다. 진흥왕순수비 [眞興王巡狩碑] (두산백과) 두번째 이러한 현상은 모든 고대국가에 있어 공통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제국들은 대제국을 건설하기 이전에 먼저 민족을 통일하고, 그 통일된 힘으로 주위를 위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 범위를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경쟁적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싸운 것이나 서로 동맹을 맺고 한쪽을 공격한 것, 주위 다른 민족국가와 동맹을 맺은 것들도 모두 우선은 자신을 보존하고, 나아가 민족을 통일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에서였다. 고구려는 부여를 통합하고 낙랑을 점령한 뒤부터 서쪽으로는 요동(遼東)지방으로 진출하여 중국왕조들과 충돌하게 되었고, 남쪽으로 진출하면서부터는 백제와 충돌하게 되었다. 서쪽으로 요하(遼河) 유역에 이르기까지는 쉽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 지역이 고조선 이래 우리민족의 거주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고조선의 멸망 후 중국 군현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이족통치(異族統治)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던데다 새로운 민족의 통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고구려의 진출이 용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쪽지방으로 진출하면서 한강 유역에서 이미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백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요하를 경계로 방어 위주의 국방정책을 강구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신라와 싸우면서 영토를 확장하려는 적극적인 남진책(南進策)을 실시하였다. 대체로 고조선이 멸망하고부터 중국민족은 요서(遼西)지방까지 진출하여 생활하게 되었고, 우리민족은 요하 이동으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한(漢)의 요동군과 낙랑군을 몰아내고 요동지방을 회복한 뒤 더 이상 서쪽으로 진출하지 않은 것은 우선 우리민족의 거주 영역부터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서 진출은 민족을 통일한 뒤로 미루었던 것이다. 고구려 말엽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요하 유역에 천리장성을 쌓고 요동지방에 많은 성을 쌓은 것도 중국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 정책이었다. 그러나 중국왕조 못지 않게 위협적이던 남쪽의 신라와 백제를 막기 위해서는 방어선이나 요새를 쌓지 않았다. 이것은 남쪽으로는 두 나라를 통합하여 민족통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근본 목표이므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정도로 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제 역시 근초고왕 때부터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면서 북진정책을 추구했는데 이 역시 통일국가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369년(근초고왕 24) 마한을 병합하여 한반도의 중서부 평야지대를 통합한 백제는 신라나 가야를 통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먼저 고구려를 통합하는 것이 민족통일의 순서라고 판단하였다. 대개 5세기까지는 고구려와 백제가 쌍벽을 이루며 민족통일의 주인이 되려는 경쟁을 계속해 왔다. 6세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가 절대적 우위에서 남진정책을 추진하자, 백제와 신라는 동맹하여 자존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신라도 6세기 들어 가야를 통합하고 군사력을 키워, 진흥왕 때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와 싸워 한강 유역 중부지방을 차지하면서 통일의 주인이 되려는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삼국간에는 쉴 새 없이 전쟁이 계속되었다. 한편, 중국대륙에는 새로운 통일제국인 당나라가 들어서 고구려를 위협해 왔다. 삼국간에 경쟁이 치열했던 민족통일은 노대국이었던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고 결국 신라가 성취한다. 그러나 당나라의 출현은 우리의 민족통일에 많은 손상을 입혀, 결국 고구려의 중요지역이었던 요동지방을 그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국통일 [三國統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세번째 발해는 고구려 장군 출신의 대조영(大祚榮)이 세웠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요서 지방의 영주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족 · 거란족 등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영주에서 거란족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696). 이에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영주를 벗어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당 군대가 추격했지만, 대조영은 당나라 병사를 무찔렀습니다. 698년, 대조영은 옛 고구려 땅이었던 동모산을 거점으로 하여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발해를 건국했지요. 이때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이었습니다. 발해는 옛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를 중심으로 연해주까지를 포함한 커다란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다시 태어나다 - 발해의 건국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2009. 2. 5., (주)신원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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