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여름이 달아난, 방 안에 들어온 귀뚜라미를 살살 달래어 보낸 밤이었지요. 유난히 공기가 서늘하다는 생각을 하고 책을 펼쳤습니다. 표지에 등장하는 두 아이. 이들은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합니다. 높은 빌딩 위로 가느다란 외줄이 위태롭고, 심지어 한 발이 떠 버린 동그란 소녀가 더욱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아이들을 보며 ‘아, 괜찮겠구나.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밴드마녀는 습관적으로 밴드를 붙이는 마녀 같은 소녀, 빵공주는 빵을 좋아하는 몸집이 빵빵한 소녀입니다. 생김새가 공주가 아니라 이름이 공주이고요. 이 두 소녀는 책을 읽는 내내 저를 붙들고 울더니 끝내 저마저 울려 버렸습니다. 옆에서 다독이는 것 같은 느낌에 자꾸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야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뒤엉켜서…… 쑥스럽게도 눈물이 났습니다.
마음을 다친 아이들이었습니다. 하늘 위 외줄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지요. 밴드마녀는 본래 밴드가 필요 없는, 티 없이 맑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엄마와 떨어져서 철저히 혼자 남겨진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에서 삐뚤어진 아이는 학교에서도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마녀가 되었습니다. 빵공주는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스스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지요. 아빠는 집을 비우기 일쑤여서 공주를 보살펴 주는 건 공주뿐입니다. 두 친구가 더욱 힘들었던 건 아픔을 털어 놓을 대상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일 힘이 되어야 할 가족이 없고, 가족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벽을 세우다 보니 친구도 없습니다. 그러다 밴드마녀와 빵공주는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지요.
어느 날, 공주의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붙잡고 싶은 마음, 더 이상 속으로 가슴앓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들을 엄마에게 가 닿게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아저씨와 결혼할 거라고 하지요. 공주에게 남은 건 봉지 가득 담긴 빵, 빵, 빵……. 엄마는 빵공주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밴드마녀의 엄마를 찾아갑니다. 예전에 함께 살던, 반갑게 본래의 이름 ‘은수’를 불러 줄 것만 같은 집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집은 텅 비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가족들이 은수와 공주에게 손을 내밀며 내용은 해피엔딩으로 달음질쳐 갑니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아름답게만 여겨지지 않는 건 ‘왜’ 일까요. 갑자기 서로에게 다가가 이해하고 껴안는 과정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던 은수의 친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픔을 너무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비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아이는 상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끔찍한 ‘죽음’까지 생각했는데, 그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아픔을 어른들이 말도 안 되는 포용력을 발휘해 전부 감싸 안겠다는 과정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피가 나고 곪아 터져서 이제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딱지가 앉은 것뿐인데, 가족들은 이제야 밴드를 꺼내 들고 상처를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제 이름을 불러 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은수야, 라고 하면 간단한데……. 친동생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날을 세우는 이유였나요? 내 동생, 하고 웃어 주면 좋았을 겁니다.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에게 노크는커녕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가족이라니, 심지어 모든 것을 생략하고 다 풀어헤치는 가족이라니. 해피엔딩보다 행복을 찾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우리네 동화처럼 행복이 급작스럽게 달려오지 않으니까요. 다음은 독자의 몫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다가가기. 마음을 담아 이름 부르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것, 또 무엇이 있을까요?*출처: 오픈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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