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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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혜지 | 등록일 | 17.02.13 | 조회수 | 92 |
새해가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고, 성재(기특이)가 태어난 지도 벌써 45일이 지났다. 우리 3반 꼬마들도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늘 궁금했지만, 가끔 소식을 전해 온 친구들이 있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주 일기를 올리고 싶었는데, 아기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서 그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마 우리 꼬마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신생아들은 하루에 맘마를 12번 정도 먹기 때문에 2시간에 한 번씩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며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출산 이후 지금까지 2시간 이상 쭉~ 잠을 자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 물론 산후조리원에 있었던 2주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쭉 잘 수 있었다. 그래서 산모들은 그 곳을 '조리원 천국'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이해 못하겠지만 꼬마들이 나중에 커서 출산을 하게 되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크크. "선생님! 출산할 때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는지 꼭 일기에 써주세요!" 했던 꼬마들이었는데, 이제야 그 날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출산 전날, 그러니까 12월 29일. 왠지 아기가 곧 나올 것 같아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에 일기를 올렸던 날이다. 그날 오후 2시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거의 1~2시간 간격으로 배가 아파 오는데, '오늘 기특이가 나오겠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던 것 같다. 미리 병원 갈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였지만 막상 아기를 낳을 생각을 하니 겁이 나고 두려움이 컸다. 그러다가 저녁쯤 되니 진통 시간이 30분 간격으로 좁혀졌다. 30분 정도 괜찮다가 1~2분 아프고. 안 되겠다 싶어 충주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청주 친정집으로 오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며 진통을 잊어보려 애썼는데, 새벽 2~3시쯤 되니 진통 간격이 5~7분으로 줄었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진통 간격이 3분이 될 때까지는 오지 말라고 했다. 병원에 와봤자 딱히 해줄 게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새벽 5시쯤 진통 간격이 3분이 되었고 병원에 도착하여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 가족 분만실로 가서 6시간의 진통 끝에 결국 기특이가 태어났다. 분만실에서 보낸 그 6시간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의 시간이었다. 정말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야 너무나 소중하고 예쁜 기특이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출산했던 친구들이 말하길 "하늘이 노래지면 아기가 나와."라고 했는데, 틀린 말 같다. 하늘은 진작 노래졌는데 그 후로도 정신을 잃을 만큼 힘들고 지쳐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아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거의 정신을 잃을 뻔해서 산소호흡기를 꽂아야 했고, 얼굴부터 목까지 실핏줄이 다 터져서 얼굴은 완전히 보랏빛이 되어 회복되는 데 3일이나 걸렸다. 그 만큼 예쁜 아기를 낳는 일은 참 힘든 일이고, 엄마들은 위대하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 꼬마들도 힘들게 낳아준 엄마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효도 듬뿍 하길! 크크. 사실 3반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기도 하고, 2월에 시간이 되면 놀러 가겠다고 약속도 했기 때문에 꼭 아이들을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성재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면역력이 약해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이 무리이고, 그렇다고 아기 혼자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무래도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우리 꼬마들은 더 이상 꼬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할 만큼 키도 많이 크고, 제법 6학년 언니 오빠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겠지!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로 아쉽지만 늘 건강하게, 즐겁게 학교생활 잘하길 가까이서 응원하려 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예쁜 모습으로 선생님 마음 속에 함께 피어난 스물 여덟 꽃꼬마들, 고맙고 사랑해^^' + 아참! 선생님이 그동안 올리지 못했던 너희들 사진을 '우리들 모습'에 올려 둘게. 늦게 올려서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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