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6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항상 건강하고 밝은 우리반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선생님 : 기성준
  • 학생수 : 남 12명 / 여 13명

신사임당

이름 장연주 등록일 16.05.19 조회수 101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로서, 그리고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신사임당(, 1504~1551). 사임당은 현모양처()를 상징하는 인물로 5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사임당은 아들 없는 집안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시와 글씨,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현모양처로 인품과 재능을 겸비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로 더 유명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시기에는 산수도를 잘 그린 화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동시대에 유명한 시인이었던 소세양()은 신사임당의 산수화에 [동양신씨의 그림족자]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율곡의 스승인 어숙권은 신사임당이 안견() 다음가는 화가라 했다.

신사임당의 작품 [초충도()].

화가로 유명했던 사임당이 부덕의 상징으로서 존경받게 된 것은 사후 1백 년이 지난 17세기 중엽이다. 조선 유학을 보수화로 이끈 인물인 송시열()이 사임당의 그림을 찬탄하면서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 이이를 낳았을 것이라는 평가에서 비롯되었다. 율곡이 유학자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자 사임당은 천재화가 보다는 그를 낳은 어머니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사임당에 대한 유학자들의 존경은 18세기 유학적 가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에 더욱 올라 마침내 그녀는 부덕과 모성의 상징으로 변화해 갔다. 말하자면 사임당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모성의 신화화는 17세기를 거치면서 생산되고 18세기에 와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임당은 신령스런 천지의 기운을 받아 율곡을 잉태한 여성이었고, 훌륭한 태교와 교육을 통해 율곡을 기른 어머니 사임당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임당의 일생을 돌아보면, 현모양처 이전에 화가로서 그리고 효녀로서도 훌륭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전통시대에 남성 지식인들의 눈으로 바라 본 것이었다. 따라서 화가라는 자신의 일생보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이 더 부각되었다. 이는 사임당을 부덕의 상징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게 한 면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사임당의 정체성을 고정화시켰고, 다양한 렌즈로 그녀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신사임당이 어떤 여성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런지, 그녀의 부덕 보다는 화가로서 추구했던 한 여성으로서의 삶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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