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5반

야무지고 똘똘한 5학년 5반 입니다

웃음이 피어나는 5학년 5반 ♡
  • 선생님 : 김미선 선생님
  • 학생수 : 남 14명 / 여 11명

북한 사람들의 생활모습

이름 신정원 등록일 16.07.04 조회수 139

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

북한은 인민학교 4년 과정을 마치면 누구나 무시험으로 고등 중학교에 가게 된다.
고등 중학교 6년 과정 중 1-2학년은 남한의 초등학교 5-6학년에 해당되는 연령이기 때문에 어리고, 놀이 모습도 어린이 같다.

남자 학생들이 주로 하는 놀이는 군사놀이, 숨바꼭질, 땅따먹기, 제기차기 등이고, 친구들끼리 편을 갈라 축구, 농구 등 운동 경기를 하기도 한다.

여자 어린이들은 주로 공기놀이, 윷놀이, 옛날 이야기나 독서에 대한 내용을 주고 받는다.
고등 중학생의 등교 시간은 8시까지이다. 지정된 장소에 7시 30분까지 집합한 후,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학교까지 걸어서 간다. 학교 앞에 도착하면 교문에 서는 기찰대(규찰대)에게 복장검사를 받고 학교로 들어간다.
교실에서 독보회를 한 뒤에 공부를 시작한다. 독보회는 정치사상에 관한 것이나 신문의 사설 등을 학생 중 한 명이 일어나 5분 정도 읽어주는 것이다.
중등반은 45분 수업에 15분 휴식이고 고등반은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으로 정규수업은 오후 3-4시에 마치게 된다.

수업을 마치면 총화 시간을 갖는데 총화는 선생님 지도 아래 학급의 간부 학생이 지작하고, 떠들고,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을 지적하는 시간이다. 지적 당하는 학생은 벌로 변소 청소나 다른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 오거나 집에 가서 먹는다.
오후 4시부터는 소년단이나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 연맹 활동인 과외 활동에 참가하여야 한다. 작업도 하고 환영 행사 등에 나가기도 한다.

 

*북한 가정생활의 변화

 

북한의 전통적인 생활풍습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여 보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가정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여 왔다. 또한 '관혼상제' 라 하여 아이가 어른이 될 때 머리를 올리는 관례, 남녀가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혼례, 사람이 죽어 장례를 지내는 상례, 돌아가신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례를 4대 예절이라 하여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로 여겨 왔다.
관호상제 중 상투가 없어지면서 관례는 폐지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 새로 정한 '가정 의례 준칙' 에 회갑이 추가되어 다시 네가지 의례가 된 셈이다.

가정은 핏줄과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가정을 "사회주의 혁명 이론의 실습장이며 생산의 최저 단위"라고 하며, 어린이들이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라 "당과 수령의 따뜻한 품 속에서 자라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관혼상제 풍습이 오늘날 남한의 가정 의례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까닭이다.
북한에서는 전통적 가정 의례가 사회주의적 생활 양식이 뿌리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 하여 처음부터 막아 왔다.
그러나 결혼과 장례 등의 큰일을 치를 때에 이웃과 친척이 서로 돕는 전통이라든지, 장례에서 화장보다 매장을 더 원하는 풍습이나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가짐 등은 아직도 남과 북에 공통으로 남아 있는 풍습이다.

 

*북한의 교통수단

 

북한의 교통 수단은 우리 나라에 비하면 아직 초보 단계에 있다.
북한의 사회 제도가 교통의 발전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산악지대가 많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발달이 늦어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교통이 더 발달되고 있다.

평양에는 시내 버스와 무궤도 전차와 궤도 전차가 다니고 있다.
무궤도 전차는 전기를 이용하여 운행하는 버스로 소음이 적고 배기 가스가 없으며, 지하철이나 궤도 전차에 비해 건설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북한 주민들이 흔히 '지하 궁전' 이라고 말하는 평양 지하철은 총 34km의 남북 노선과 동서 노선의 2개 노선에 17개 역이 있으며, 지하 100-150m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부터 평양에 택시가 운행되고 있으나, 요금이 비싸(기본 요금 6원, 주행 거리 1km당 1원) 일반 주민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지금도 화물 자동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다.

 

* 북한의 혁명을 위한 말과 글

 

공산주의 혁명사상을 나타내는 북한의 말들을 찾아보자.
오늘날 남북한에서 사용되는 말이 많이 달라진 까닭은 남북이 각각 표준어로 정한 말이 서로 다른 데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혁명을 나타내는 말들을 많이 사용하고, 한자식 단어를 한글식으로 고쳐 쓰고 있는 데에서 더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집안과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나타내는 말들이 지명, 인명, 학교명, 도로명 같은 것에 많이 쓰이고 있다.
아버지 이름을 딴 '김일성 종합 대학' 이나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붙인 '김형직 사범 대학' 과 같은 학교 이름도 있다.

그 밖에 '은덕군', '영광군', '온정리', '광명리', '경사리', '개선동' 등 지역이나 동네의 이름들도 공산주의 혁명 사상을 높이려고 붙여진 이름들이다.
또한 은혜, 은덕, 영광, 충성, 충실, 혁신, 전진, 선봉 같은 이름을 가진 어린이들이 유난히 많다.
이런 것들은 공산주의 혁명의 선봉장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들이다.

 

* 북한의 표준어와 문화어

 

우리는 언어를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언어는 공산주의 혁명의 바탕이며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힘 있는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말다듬기 사업을 통해 많은 어휘들을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말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욕설도 서슴없이 쓴다. '민족적 원쑤를 까부수고', '지껄였다.' '미쳐 날뛰고 있다' 같은 말들을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투쟁성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있다.
우리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1966년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을 중심으로 쓰이는 평양말을 기준으로 언어의 민족 특성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다." 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문화어'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남북한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서울말 중심의 표준어에서 벗어나 평양말을 중심으로 한 '문화어' 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북한의 문화어에는 함경도 사투리가 많이 섞여 있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이 간도 지방에서 배운 말들이지만, 김일성 주석이 직접 쓰는 말이기 때문에 문화어가 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혁명성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이며 적대적인 용어와 어법으로 말을 고쳐 나갔다. 즉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어감도 전투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어 정책에 따라 북한에서는 '불벼락을 안겨 준다.', '일떠서다.', '까밝히다', '아글타글', '1백일 전투' 와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선동적인 말들이 널리 쓰이고 있다.
북한은 1959년부터 한자를 전혀 쓰지 못하도록 하다가 1968년부터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한문 교육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조국이 통일되면 남한에서 발행되는 신문, 잡지들을 읽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한글만 쓰다보니 오랫동안 한자의 영향을 받아 온 우리말의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해 혼란이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좋아하는 음식

 

북한의 어린이들은 좋아하는 음식보다는 어떤 음식이든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이밥(쌀밥) 을 먹는게 평생 소원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16일), 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 국제아동절(6월1일, 사회주의 어린이날) 등에는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 등 특별 배급이 나옵니다.

그러나 평양, 함흥 등 대도시에는 아이스크림, 단물(냉차), 사탕, 과자류 등을 팔고 있습니다.
특히 평양의 외화 상점(외국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상점)에서는 가락지빵(도넛), 설기과자(카스테라), 애기 과자(우유 과자), 과일 단물(주스)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도시에 사는 아이들만이 사 먹을 수 있습니다.

 

* 북한 직장의 하루생활

 

북한의 직장은 보통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난다.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근무를 하고,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을 갖는다.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근무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집에서 싸 온 도시락(곽밥)을 먹는다.
북한 직장에서는 50분 일하고 10분간 휴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루 근무가 끝나면 직장별로 약 30분 동안 '작업 총화'를 한다.
작업 총화란 그 날의 작업에 대해서 평가하고 반성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작업 총화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종 회의나 공산주의 학습회에 참가한다.

학습회는 약 한 두 시간 정도 계속되는데, 학습회의 종류로는 '당 정책 학습회', '김일성 수령 덕성 학습회', '신문독보회', '시사토론회', 그리고 '당 지시 학습회' 등이 있다.
이렇게 때문에 북한의 직장 근무는 오후 7-8시가 되어야 끝난다.

 

이전글 북한 사람들의 생활모습
다음글 북한 사람들의 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