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 자신이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기
더불어 - 학교라는 사회에서 혼자가 아닌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기
즐겁게 - 인간과 사회,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물음을 던지며 탐구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다시쓴 기행문-김다은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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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다은 | 등록일 | 16.11.18 | 조회수 | 7 |
기행문 김다은 화창한 아침, 설렘을 가득 안고서 집 밖을 나왔다.그래,오늘이다 졸업여행에 시작은!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약속된 시간안에 가기 위해서 무거운 짐들을 들고 뛰어야만 했다. 다들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뛰는속도가 올라갔다.퍽! 내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나갔다. 다급한 마음에 대충들고 뛰어갔다.바스락 바스락 낙엽잎이 내 발에서 부서져갔다.마치 설렘이 가득한 내 마음처럼 소란스러웠다.장전공원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인사했다”안녕?너 돈 얼마가지고 왔어?” “한 3만원?” 몇마디 이야기 하다보니 벌써 우리반이 버스에 탈 차례가 왔다. 짐을 트렁크에 넣어두니 확실히 편해졌다.버스에 앉아서 선생님이 안전벨트를 매라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떨어졌던 핸드폰 상태가 걱정되었다.핸드폰을 보니 액정에 심하게 금이 가 있었다.’제발제발..!!’속으로 빌면서 전원을 켜보왔다.’하...망했다아..’ 화면이 맛이갔다. 즐거울 뿐인 여행에 오차가 생겨버렸다. 엄청 커다란 문제가 나의 기분을 망쳐놓았다. 그래도 시작부터 우울해 지긴 싫어서 ‘친구꺼 빌리면 되지뭘..’하고 속으로 다독였다.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려서 대한민국역사 박물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서울 풍경을 보고 느낀게 딱 한가지있었다.’아,이런게 도시구나!’화려한 건축물들 높은 건물 넓은 광장 이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서울 서울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들어가서 관람을 하는데,모둠끼리 다니기로 하였다. 같이 사진도 찍고 기록도 하라고 말씀하신후 모음끼리 흩어져서 관람을 하였다.모두 1,2,3,4전시관이 있었다. 1전시관은 대한민국의 태동이라는 이름으로 1876~1975의 일들을 전시하였다 대부분 1학기때에 배운 내용으로 그때당시에 있었던 물건들이 상황을 잘 나타내 주었다. 특히 눈에 띄이는 내용이 있었는데 1876 광화도 조약이후에도 많은 국약들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불평등한 조약이였던 것과 조선왕실이 러시아의 세력으로 일본을 몰아내려하자 위기감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는 점이다. 불평등한 조약은 광화도 조약이외에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불평등조약이 많이있었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모욕과 혼란을 주려고 명성황후를 죽이기 이전에 우리나라도 러시아의 세력으로 일본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점 이다. 다음으로2전기관이다.1945~1960의 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 후에 복구하려고 했던 노력들로 전시된 곳이었는데 정부수립 기념우표에 사월과 오월이 사원과오원이라고 표기되어있어서 재미있게 생각 했다. 또,6.25이후 전시자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했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라는 대목을 보고 크게 감동했었다.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싸우신 분들과 돌아가신 분들이 듣고계셨다면 엄청 보람을 느끼셨을 것 이다.천천히 둘러보던중 국가유공자에 대해서 궁금한것이 생겨 선생님께 질문했을때 선생님이 하신말씀중 “국가유공자에게도 등급이 있다.”라고 하셨는데,이부분이 나에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국가유공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분들,나라에 의해 희생된 분들인데 등급을 나누고 그에 따른 보상도 다르다는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3,4전시관을 둘러보았다.이 전시관은 비슷한 내용들을 가지고 전시하여서 묶었다.1961~1987,1988~ing이 기간의 이야기들을 전시하였다. 고된 전쟁과 전쟁후 복구 그리고 성장해 나가는 경제와 문화들이 있었다. 1961년 경제 개발을 추진하여서 1970년 새로운 벼농사법을 발견하고 알리기 시작 하면서 경제는 끝없이 성장하였다.경제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다양한 문화활동도 활발해 졌다.라는 내용이었다. 여유롭게 관람했다 보니 시간이 촉박했는지 선생님이 서둘러서 다음장소로 이동하였다.다음으로는 위안부정기수요집회에 참여하는 것 인데 오늘따라 많은 학교,단체에서 참가하였다.관계자 소개와 발언을 시작으로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자유발언중 사용했던 단어들이 적절치 않았던 것도 있었다. 집회를 시위로 표현하는등 미묘하지만 조심해야 할 단어을 신경쓰지 못 했나보다.또 “한국정부가 방패가 되어주고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이 되어서 안타까웠다.앉아 있는 사람들에 손에는 각자 만든 팜플렛이 있었다. 다들 소녀와 나비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 했다.하긴,치유하지 못한 상처가 가득한 ‘소녀’와자유롭고 싶은 ‘나비’서로 지금 상황과 잘 맞는다고 생각된다. 수요집회 중간에 갑자기 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인터뷰를 해보았다. 서울 영동포고에 살고계시는 아주머니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Q:위안부 수요집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다 함께 참여함으로 더 역사적 의미가있다. Q:어떤마음을 가지고 참석을 하셨나요?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참여 했다. Q:언제나 참석하시는 위안부 할머니분들을 보시면 어던 생각이 드시나요?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인터뷰에 응해주셨지만 듣기만 할뿐 다 기록하진 못해서 아쉬웠다. 수요집회가 끝난후 점심식사를 간단히하고 서대문형무소를 견학하였다. 일제시기 당시 수감되어 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생활 모습을 더묵 생생하게 볼 수있었던 시간이었다.아,그리고 일제시기 이외에도 한국전쟁때에 정치적으로 북한의 정치체제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 곳에 갇혀있었다고 했었다.그 증거로 감옥 외부에 뚥린 구멍들이 모두 북한군의 총상이라고 한다.서대문 형무소에서는 모든게 잔인했고 지옥같았다. 독립운동가들이 받았던 고문부터해서 감시와 노역,사후시체처리하는 곳까지 모두 봐서 그때당시 독립운동은 목숨걸고 하는 거였다는걸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나도 사회시간에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한 사람들이나 독림운동가들을 보고 나도 저런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맞써 싸우겠어 라고는 했지만책에서만 배우고 이야기만 듣고하니 지금와서 보니 그런일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 무거운 일이며 정말 죽을각오없이는 못할 행동이란걸 느꼈다. 저녁6시쯤 맛있는공연 비밥을 보러 이동을 하였다.직접 셰프를고르는 공연이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모두 새로운경험이었고 배움이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해진상태였다..여기저기서 하품소리가 들려왔고 공연이 시작되기전까지 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피곤해서 짜증이나려고 했다.그 순간 우렁찬 인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비트박스로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다들 공연에 빠져들게 하였다. 마음속엔 피곤함은 사라지고 흥만 남아돌아 공연에 일부가 되어 즐겁게 관람하였다.8시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갔다.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서 다들 졸린지 버스가 출발하고 10도 안되서 조용해졌다.숙소가 양평에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쉬려던 찰나에 레크레이션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였다.’진짜,오늘일정의 끝은 어딜까..?’하는 생각과 함께 애들을 불러서 줄을 세우고 선생님을 따라서 강당으로 갔다.여자애들의 춤사위가 끝나고 선생님들께서 준비하신 게임을 즐겁게 참여한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게되는 영상을 보고 감동의 분위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숙소로 돌아와서 자려고 보니 벌써 12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그래도 잘 수 는 없지!!3시반까지 친구들과 오늘하루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 둘씩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졸업여행의 두번째 날이 다가왔다.눈뜨자 마자 보이는 낮선천장이 풍겨오는 익숙함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떨쳐내고 일어났다.3시가 넘어서 잠을 작고 약 4시간의 숙면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아파왔다.’그냥 일찍 잘걸..’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이기에 고통을 받아 낼 수 밖에 없었다.씻고 난후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것도 길게..한참을 기다려야 할것 같은 풍경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하지만 시간은 금방갔고 아침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아침밥을 먹으면서 다른반에 친구들과 간단한 대화를 하였다.”안녕?잘잤어? 난 밤샜다~” “우리도 거의 2신가?그때잤지~!”내 신조가 있다면 언제나 활기차게렸다. 피곤해도 즐겁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오늘일정이 뭐였더라?”올라오는 길에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그으..아!경복궁 가고 자유여행 이였을걸?”일정을 확인하고 알았다.’오늘이 자유여행날이구나!!!!!!’속으로 앗싸를 연달아 외쳤다. 이기분을 그댈 표현하면 엄청 민망해 질테니까말이지 방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여행을 할 채비를 마치고 숙소에서 떠났다. 버스에서 들뜬 마음을 가지고서 앉았지만,퐁당! 피곤함에 짓눌려 잠에 빠져버렸다. “ㄷ…..아….나” “다ㅇ..아 이..어나!!” “다은아!!일어나!!” “으헛” 친구가 흔드는 소리에 간신히 깼다. 벌써 도착한건가?아니 시간을 보니 내가 푹 자버린 거였다.주위를 둘러보니 잠을잔건 나 혼자가 아니였나 보다 다들 깨우는 소리에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모습을 보니 동질감이 느껴졌다. ‘너희도 밤 샜구나.’버스가 추차하고 나니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다들 정신이 점차 돌아온 모양이다. 아직도 멍한 표정에 애들이 대다수였다.선생님께서 앞장스시면서 경회루까지 가서 간단한 단체관람을 마치고 모둠활동을 시작하시라고 하셨다.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모여서 지도와 미션지를 펼쳐서 위치를 확인했다.서둘러서 현재위치를 확인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점점의견이 엇갈렸고 결국 큰 공간으로 나왔다. 그곳은 근정전이 였다 .서둘러서 할 수있는미션3개를 하였다.재법 빨리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시간이 별로없었다.안내솔르 찾아서 위치를 확인하고는 뛰어갔다. “내가 여기어딘지 알아냈어 아까 처음에 있던곳에서 미션하나 해야되.빨리 가자”다들 서둘러서 뛰어가는데 혼자 느긋하게 걸어오는 친구가 있었다. “빨리와 우리 늦어”몇번이고 말했지만 듣는건지 않듣는건지 걸어왔다.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해서 였을까..마음이 짜증으로 양념되고 있었다.결국 미션을 다 하지 못했지만 다음 일정이 자유여행 이여서 아쉬움은 미루어 두었다. 우리모둠은 여행주제가 서울속에 힐링이었는데 일정을 다양하게 짰지만 길을 못찾고 사소한 다툼에 시간을 잡아먹어서 거의 한건 헌법재판소에 잠깐 가보고 인사동 쌈지길에서 쇼핑을 한것 정도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생각했던 것 보다 컸고 단아했다. 재판소벽에 새겨진 문양은 꽃모양이었다.아마 정부마크와 비슷했던걸로 기억이난다.이곳에서 헌법에 관련된 일로 최종적으로 재판을 하는 곳이며 이곳에서난 판결은 바꿀 수가 없다고 한다. 인사동에서는 거의 쇼핑만 했는데 청주에 시내랑 비슷했지만 더 복잡하고 볼거리도 다양했다. 그중에 비녀와 한복인형,수저를 파는곳이 인사동 곳곳에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수저와 비녀를 판다는것이 신기했다. 그걸 좋아하는 다른 나라사람들도 신기했다.대충 파리에 가서 애펠탑열쇠고리 사면서 좋아하는 느낌이려나? 뭐,나도 비녀가 이뻐서 하나샀다.머리가 짧아서 사용하진 못 하지만 그래도 기념겸 나중에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샀다.자유여행이 끝나고 세종대왕님동상앞으로 모였다.여자1팀과 선생님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반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그덕에 신기한걸 보긴했지만 말이다.바로 역사의물길이라고 분수같이 쭉 흐르는 돌판에 역사를 새겨 넣은 것 이다.나중에 찾아보니 동쪽 물길에는 1392년부터 조선건국이후 2008년까지 서쪽물길에는 미래를 기록하기 위해서 빈칸으로 두었다고 한다.또,세종대왕동상뒤편 지하에는 세종대왕님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가보지 못한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선생님과여자1팀이 도착하고 서둘러서 단체사진을 찍고 이동하였다.다음장소는 국회의사당이었다.국회에도 우리반이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서 길을 못찾으셨지만 다행이도 3반 선생님께서 마중나오셨다.회의실에 들어가니 딱 뉴스에서 보던 곳이었다. 회의실을 구경하고 있던중 마침내 오제세의원께서 들어오셨다.오제세의원님이 국회가 하는일과 국회가 있는 이유등을 설명하시고 질문시간이 왔다. 나는 고민하고고민해서 질문을 했다.”의원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의법중 어느 부분이 가장허술하다고 생각하시나요?”용기내어 물어봤지만 같은반친구가 한”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내 질문이 묻혀버렸다.오제세의원님이 끝내 시간관계상 내 질문에 대답해 주시지 못 하셔서 내심 속상했던 찰나에 옆에있던 친구가 나에게 질문에 답 못들었는데 괜찮나고 물어봐주었다.나는 아쉬움을 당황스러운 질문을 한 친구에게 싫은감정을 남기긴 싫어서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냥넘기기가 힘들었다.. ‘만나기 힘든 분인데..’하고 몇번이고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그래도 오제세 의원님과의 만남은 많은 공부가 되었다.국회는 국민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세금을 사용할 곳을 정하고 법을 만드는곳 이란걸 좀더 세세하게 알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인원체크를 했는데 친구가 한명사라졌다.선생님은 당황하시면서 백방으로 찾아보셨고 우리는 길잃은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결국 아까 오제세 의원님과 단체사진이후 따로 사진과 싸인을 받으려고 남았다가 뒤쳐진 것으로 밝혀졌다. 다같이 걸어서 저녁식사를하려고 식당으로 갔다. 뷔페식 이여서 입맛대로 푸짐하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일찍 숙소로 돌아와서 편의점으로 내려가 과자와 라면을 사들고 다같이 맛있게 먹었다. 여자모두가 한방에모여서 댄스파티도 열고 좀비게임도 하다보니 잘시간인 10시 30분을조금 많이 넘어섰다.우리반은 다른반 보다 일찍했기에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시계의 초점을 돌려서 시계가 잘못되어 몰랐다고 시치미를 때 선생님께서 11시30분까지 조용히 놀고 자라고 하셨다.11시30이 되자 선생님이 오셨고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놀았다. 오늘 밤도 새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자버렸다. 상쾌한 아침,차가운 바람이 내 볼에 스치니 찬기운에 잠에서 깼다.벌써 길것같았던 2박3일의 졸업여행에 막이내리는 날이 다가왔다.간단하게 아침을먹고 짐을싸서 숙소에서 나왔다.짐을 버스 트렁크에 실고나니 여행의 끝이란게 실감이 났다.그리고 전날의 여운을 품은채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다.레일바이크를 타는데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게 탔다.친구들과 웃으면서 타서 그런지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중간에 터널이 있었는데 안에는 은은한 초록색 조명들과 뒤에서 들리는 떠드는 소리에 조금 으스스했다.종착지점에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있었던 나는 돈이 없었고 친구들이 먹는걸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나의 구세주가 나타나서 핫바하나를 사주어서 남부럽지 않게 먹었다. 다시 20여분간에 휴식끝에 레일바이크를 타고 왔던길을 되돌아갔다.버스로 돌아와 긴 잠에 빠졌지만 깨는건 금방이었다. 마치 달콤한꿈을 꾼것처럼..장전공원에 버스가 멈춰섰고 내려서 짐을빼고 반끼리 종례를 하고 헤어졌다. 종례를 끝으로 졸업여행은 끝이났고 이것이 나의 초등학생 마지막여행이며 잊지못할 추억이 가득한 여행이란걸 깨닭는데에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 남는 여운은 너무나도 컸지만 잠시뿐이었고 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받았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많은 준비와 배움으로 시작해서 실전으로 상상만 해왔던 순간을 생생하게 보았고 그것을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나의 여행은 끝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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