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반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넓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서로 어울려 생활홤으로써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 자신이 속해있는 곳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5학년 1반이 되겠습니다.  

어울려 사는 어린이
  • 선생님 : 연경은
  • 학생수 : 남 13명 / 여 16명

6조 신사임당

이름 심윤아 등록일 19.11.14 조회수 22
첨부파일

조선 중기의 화가이자 문인으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본관 평산(平山)

호 사임당(師任堂)

출생지

강원도 강릉

주요작품

<산수도>, <초충도>

시대

조선 중기

사임당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에서 사용된 당호로 임사재(任師齋)라고 칭하기도 함. 본명은 확인되지 않음. 이름이 인선(仁善)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는 없음

아버지는 영월군수(寧越郡守) 신숙권(申叔權)의 아들 신명화(申命和)이고, 어머니는 세조 때의 원종공신(原從功臣) 이유약(李有若)의 손자인 이사온(李思溫)의 외동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낸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여 이선(李璿이번(李璠이이(李珥이우(李瑀)의 네 아들을 두었고, 조대남(趙大男윤섭(尹涉홍천우(洪天祐)에게 출가한 세 딸을 두었다. 딸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맏딸이 매창(梅窓)이란 호를 사용한 기록만 남아있다.

출생과 성장

기록에 따르면 신사임당은 1504(연산 10) 음력 1029일에 외가가 있는 강원도 강릉에서 신명화와 용인 이씨의 다섯 딸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외조부인 이사온의 총애를 받아 그에게 학문과 시(() 등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녀가 그림에 재능을 보이자 외조부 이사온이 안견(安堅)의 그림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이의 선비행장에는 신사임당이 7세 때에 안견의 그림을 모방해 산수도(山水圖)를 그렸는데, 그때 이미 매우 절묘한 솜씨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경전(經傳)에 능통하고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썼으며, 바느질과 자수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결혼과 죽음

1522(중종 17) 태종 때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했다.

신사임당은 음력 517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이의 선비행장에는 그날 관서 지방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서강(西江)에 도착했는데, 신사임당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전에 행장에 있던 유기그릇이 모두 빨갛게 변하는 괴이한 일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사임당은 죽은 뒤에 파주 두문리의 자운산에 매장되었다. 현재 파주 자운서원 뒤편에 있는 율곡 이이의 가족묘역에는 율곡 이이의 묘역 아래에 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의 합장묘가 있다. 율곡 이이의 가족묘역은 자운서원 등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5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수도(山水圖), 초충도(草蟲圖), 묵포도도(墨葡萄圖), 노련도(鷺蓮圖), 어하도(魚鰕圖)강릉의 오죽헌박물관에 있는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에는 8폭의 초충도가 전해진다. 여기에는 오이와 메뚜기, 접시꽃과 잠자리, 수박과 여치, 가지와 사마귀, 맨드라미와 개구리, 양귀비와 풀거미, 봉숭아와 잠자리, 원추리와 벌이 섬세한 필치와 구도로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이후에 제작된 화첩 등에 신사임당의 것으로 수록되어 있는 그림들이 다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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