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배우고
바르게 행하며
튼튼하게 자라자!~
12월4일 6교시 역사 2205김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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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휘나 | 등록일 | 20.12.04 | 조회수 | 6 |
정조, 나라의 중흥을 꾀하다
외척세력을 제거하고, 붕당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인물을 고루등용하였다. 각 붕당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명백히 가리는 적극적인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강력한 정치기구로 만듦. 젊고 유능한 관리를 선발하여 개혁세력으로 육성하였고,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였다.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고 정치적, 군사적 기능을 부여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통공정책을 실시하여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였고,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였다. "대전통편"과 "탁지지" 등을 편찬하였고, 중국과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실용적인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앞장섰다.
모내기법의 확대로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다
정부는 황무지 개간을 장려하였고, 양반지주도 적극적으로 개간에 나서서 경작지가 크게 늘어났다. 농민도 농기구와 비료를 주는 방법을 개량하는 등 농사짓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보나 저수지와 같은 수리 시설이 늘어나면서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모내기법을 실시한 결과 쌀 생산량이 늘어났으며, 벼와 보리의 이모작도 확대되었다. 노동력이 절감되어 한 사람이 농사지을 수 있는 경작지 면적도 크게 늘어났다. 다양한 상품작물 재배가 늘어나면서 일부 농민이 부농층으로 성장하였다. 모내기법은 양반 지주의 토지 경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주변 농민에게 소작을 주는 대신에 노비나 머슴을 늘려 직접 토지를 경영하는 지주가 늘어났다. 농민은 소작지를 잃고 품삯을 받고 일하는 임노동자가 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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