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의 창의성교육-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임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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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가영 | 등록일 | 17.07.26 | 조회수 | 101 |
유치원에서의 창의성교육 (우리의 미래에 창의가 답이 될 수 있을까?) 프롤로그 브레인스토밍, 트리츠, 스캠퍼 용어는 이제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님 우리는 창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엇이 창의적인 것일까? 창의적인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창의는 가르쳐지고 향상될 수 있는 것일까? 창의란 타고난 천재가 영감을 얻어 만들어 내는 신비한 것일까? 창의는 내 안에 있다. 영웅이 등장하는 신화? 신화학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영웅의 여정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도전, 무수한 고난의 극복, 진리의 전파라는 우리가 꿈꾸는 가치 있는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영웅을 꿈꾸지만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신화의 주인공은 신화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인간의 외양을 가진 신의 다른 모습이다. 창의는 신화와 전설의 구조를 그대로 닮아있다. 창의와 신화와 전설은 다른 이름, 아인슈타인, 피카소, 프로이드, 다윈 각자의 분야에서 신화를 만들어낸 지성들에게 열광한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감사함이 아니라,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전능한 능력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창의란 우리가 절대 이를 수 없는 절대적 권능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신화, 창의에 대해 결말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신화의 주인공은 인간이었음을 기억하자. 보통의 인간. 처음부터 전지전능한 영웅의 이야기는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창의 역시 마찬가지다. 창의가 소수의 전유물이고 노력없이 영감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창의에 대해 동경하지 말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창의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창의와 신화는 같다. 창의적 산물은 인간이 고통과 역경을 딛고 만들어낸 전리품인 것이다. 10년의 법칙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최소한 10년의 강도 높은 연습이 필요하다라는 10년의 법칙은 보편타당한 원리이다. 이는 1만시간의 법칙이라고 한다. 연주 실력이 탁월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지 연습시간일 뿐이다. 체스의 대가는 최소한 10년간의 강도 높은 준비가 필요했다는 연구가 있다. 과학, 예술, 문학 분야에서 10년의 법칙은 어김없이 존재한다. 1프로의 영감과 99프로의 노력의 에디슨의 말은 천재의 겸손이 아니라. 실제 에디슨의 생애가 그러했다. 에디슨은 13,000번의 실패, 약 40년 이상의 시간을 담보로 하여 백열전구의 발명을 했다. 신화는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탄생한다. 신화는 매력적이다. 신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인간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웅이 처음부터 전지전능한 권능이 주어졌다면 열광할 이유가 없다. 최소한 10년이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 그 무겁고 고단한 발자국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답기에 영웅은 가치 있는 인격이 된다. 재능이 없어도 여건이 부족해도 된다. 처음부터 전지전능했던 영웅은 없었던 것이다. 내 안의 영웅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2. 경험이 만드는 함정 창의적인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끝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창의는 재능을 가진 소수만의 전유물이라는 믿음은 우리의 경험에 근거한다. 능력이 출중한 변호사는 재판에서 이기는 한 번의 모습, 기상예보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시스템의 정교한 이론보다는 단순한 적중률을 경험하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기초로 형성된 경험은 타당한 결과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이는 경험 이상의 실증적 탐구와 연구가 병행되어야만 한다. 벼룩의 다리를 자르면 벼룩이 귀머거리가 된다는 결론은 현상이 진실을 왜곡하는 통로를 보여준다. 창의는 독창성이라는 요인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새로워야 창의적인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특정 문제에 있어 창의적인 사람이 하나로 제한된다는 의미다. 상대성 이론을 연구했던 사람이 실제로는 수만 명이었지만 이 분야에서 창의적인 사람은 아인슈타인뿐이다. 모두가 상대성 이론의 결론에 스스로 도달해도 아인슈타인 이후라면 그들은 실제로 대단히 창의적이지만 결코 창의적인 사람으로 명명되지 못한다. 창의는 극소수에게만 제공되는 구조인가? 창의적이기 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많은 생각이 필수라는 믿음은 어떤가? 푸아송 분포를 따른다는 경험을 기초로 형성되었다. 이는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푸아송 분포는 개인적 수준이 아닌 사회 전체 수준으로 해석될 때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은 결코 푸아송 분포가 말하는 정도의 시도를 할 수도 없고, 사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지도 않는다. 디엔에를 발견한 왓슨과 클릭은 처음부터 그저 이중나선 한가지만을 가정했다. 결국 창의의 발현은 한 개인의 시도가 아닌 그 사회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시도되느냐에 달려있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창의적일 수 있지 않을까하고 가정하는 것은 낭비라는 확신은 함정을 만든다. 그것은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구조화된 결과이다. 우리 사회의 모두가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회의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함정 탈출의 유일한 기회이다. 3. 창의가 인성을 만났을 때 창의와 인성을 함께 강조하는 요즘의 추세는 우리의 상식에 기초한다.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불리려면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바른 인성을 갖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바른 인성을 갖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좋은 인성은 창의의 아주 중요한 재료이다. 왜냐면 창의란 개인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창의가 뛰어난 개인의 전유물이 었던 다빈치는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였다. 해부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질학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처럼 재능있는 천재가 더 이상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는 혼자서 창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티븐 잡스가 기술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들이 없었다면 아이폰은 나오지 못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는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경청,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덕목이 필수이다. 자신의 삶, 타인의 삶 존중하는 겸허한 삶의 자세를 갖게 될 때 진정한 협력이 만들어진다. 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은 협력과 융합을 필수로 하는 사회에 적격이다. 바른 인성이란 그저 말 잘 듣고 착한 순응적인 사람의 특성이 아닌 주관은 뚜렷하지만,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이다. 4. 우리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노벨상은 기존의 지식을 많이 안다고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얼마나 새롭고 얼마나 유용한 것을 알아내느냐에 달려있다. 노벨상은 결국 창의의 문제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전문가만이 창의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새로움은 전문가의 눈에만 보인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과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인지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떨어지는 사과를 볼 때 누구는 만유인력을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먹는 모습을 생각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똑같은 무엇에서 새로움을 보기 위해는 그 분야의 최고의 지성이 되어야만 한다. 한 분야에서 쉬지 않고 10년을 달려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건 자율적능력이다. 흥미와 동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머리<노력<즐기는 사람 하지만 흥미만으로 10년을 끌고 갈 수 없다. 근원적힘은 스스로 연구하는 자율적 능력이다. 우리나라 학생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엔 최고다. 하지만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은 서툴다. 학교교육의 정상화 하나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과정에 익숙한 학생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의 학교 평가체제에서는 학원교육이 효율적이다.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배울 수 없다면 우리에게 노벨상은 없다. 시간이 걸려도 과정을 가르치고 내재화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결국 천천히 가야 한다. 기본에 충실하고 10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자. 노벨상은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만들어 진다. 5. 방법론으로서의 융합 최근 stem, steam 용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창의라는 화두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융합을 택한듯하다. 유행이란 경험적으로 그럴듯함이 관찰될 때 파급력을 갖는다. 서로 다른 무언가가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전적 정의를 보면 융합은 창의를 담보한다. 융합은 새로움을 전제로 한다. 융합은 창의의 이음동의어이다. 융합은 창의의 방법론적 개념이다. stem, steam은 융합의 전형적 예이다. 서로 다른 몇 개가 섞이는 것이 모두 융합은 아니기 때문에 혼합일 수도 있다. 융합이 되려면 화학적 작용이 있어야 한다. 융합은 몇 개를 섞는가가 아닌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가로 정의해야 한다. 1960, 지능학자 mednick은 창의를 서로 다른 영역의 두가지 속성을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융합이라는 아이디어와 맥을 함께 한다. 예)노벨문학상(과학,공학 전문지식)/노벨화학상(예술 취미)->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이 창의를 이루는 재료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화학반응을 일으켰는가 융합과정이 밝혀져야 한다. 융합은 혼합의 오사용일수도 있다. 올바른 방법론으로서의 융합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어떻게 섞여 어떤 원리로 창의가 발현되는가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아직 창의가 영역일반성을 갖는지 영역특수성을 갖는지 논쟁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융합교육도 아직 설득력을 갖기엔 부족하다. 창의의 영역일반과 영역특수의 논쟁은 진행중이다. 모듈(특정영역에 관여하는 즉각적 반응의 신경구조이기에 특정 영역마다 독립성을 갖는다)->융합이 창의의 기본재료라면 창의의 발현기제가 영역일반이라는 전제에만 설득력을 갖는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지능의 모듈성을 제안->다양한 분야의 통합이 창의성을 이룬다. 이와같은 이론도 없이 융합을 이야기하려면 설득력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또한 창의가 개인의 심리학적 구인으로 설명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창의가 정규분포가 아닌 푸아송 분포를 보인다는 주장은 어쩌면 창의가 개인내 구인으로만 발현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많은 창의적 사람들은 한분야의 전문가이다. 융합이라는 개념은 쉽게 이해되면서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믿음을 주고 있다. 이제 유행이 이론적 경험적으로 그럴듯한지 밝혀야 한다. 6. 창의, 조금만 쉬어가자! 우리가 창의에 열광하는 이유? 그러나 우리에게 유통되는 창의에 대한 지식이 우리사회가 재촉하는 창의라는 이름의 열매를 수확시킬 수 있을까? 우리의 창의에 대한 담론은 정확한 이론과 실증적 데이터에 기대고 있을까? 예를 들어 다양한 사고가 창의를 발현한다?고 할 때 왓슨과 클릭의 창의는 처음부터 이중 나선 한 가지 가능성만을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철저한 선행지식에 근거한 확신을 기반으로 하였다. 실제적인 적용도 어느 정도 이론적 논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또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학생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인지주의 학자들은 보상이 내적동기를 손상시켰기 때문, 행동주의는 일시적 현상이고 곧 회복된다고 주장, 변별자극이라는 기제로 설명한다. 이렇게 이론적 논의가 필요하고 이는 선택의 문제이다. 그 사람의 몫이다. 시대적 요구에 대한 창의는 시의 적절하지만 한 순간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론적 논의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라도 창의라는 이름을 마구 가져와서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정으로 창의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의 실현을 원한다면 이제 잠깐 숨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을 갖자. 7. 바르게 귀인하자! 적성을 찾으라니까->즐겁게 하라고->언젠가 좋은날이 올 거야. 적성은 성공을 만드는 재료일까? 성공한 사람은 자기의 일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적성 이전에 흥미인 것이다. 쉬지 않고 10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흥미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변인이다. 그러나 흥미를 만드는 것은 적성이 아니라 지식이다. 알아야 재미있어 진다. 세상은 자기의 과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진다. 창의적인 사람이 도기 위한 원인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지 않다. 서두르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며, 10년을 꾸준히 노력하는 일.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창의라는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천재를 만드는 것은 타고난 적성이 아니라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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