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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3학년 정다영의 어머니 박찬란
작성자 정다영 등록일 13.11.13 조회수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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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고>

스무 살의 수련에게 박수를

 

옥천여자중학교

3학년 정다영의 어머니 박 찬 란

 

새벽 한 시구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읽던 책을 덮고 잠시 천정을 바라본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이 밤에 무언가를 먹기보다는 살짝 기분 좋게 배고픔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한 밤중의 이 배고픔이 갑자기 상쾌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책 한 권을 다 읽은 기쁨이리라. 아이를 둘 낳아 키우면서 근 20년 간 육아서, 교육서, 아이들 공부에 관한 서적들만 골라 읽다가 오랜 만에 장편소설 한 권 읽었다.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이 책에는 우수련이라고 하는 스무 살짜리 여자아이가 나온다. 여자아이. 그래 나와 똑같은 성별의 여자아이다. 여자아이라고 하니 우리 집의 어린 딸아이가 연상된다. 첫 아들 때 겪었던 산고를 그대로 또 겪으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심한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았다. ‘당연히 아들이겠지..’ 간호사는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고, 입히고, 이름표를 채우고, 강보로 돌돌 감싸더니 포옥 안고 복도로 나갔다. 그래도 아들이겠지하며 굳게 믿고 싶은 마음 한가운데 낭랑한 목소리가 한 가닥 떨어졌다. “축하합니다. 공주님 이예요.” 아이 아버지에게 아기를 건네며 간호사가 말했다. ‘철렁가슴이 철렁했다. ‘딸이라니…….딸이라니…….’ 떠듬떠듬 추스리고 일어나 산후조리실로 옮겨갔다. 훈훈한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아기 바구니. 투명한 그 바구니 안에 누워있는 아주 아주 작은 아기. 금방 막 태어나 보오얗게 씻어 불그스레한 얼굴로 누워있는 아기, 아주 아주 작은 아기. 아기는 눈부시듯 아련하게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아기와의 첫 눈 맞춤.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먹먹한 마음으로 그저 그 작은 아기를 살며시 창문 쪽으로 밀어놓았다. 한 겨울이라 바깥쪽에서 냉기가 들어왔다. 말없이 가만히 자리에 눕는 나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친정어머니. 말하지 않아도 안다. 우리는 이미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그 날 그 시각, 우리 삼대는 그렇게 조용히, 훈훈한 겨울의 방 한가운데서 서로를 들여다보며 서로 같은 여자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왜 내가 딸을 낳고 먹먹했는지 그 답을 찾았다. 해경이 수련을 데리고 바닷가로 여행가서 하는 말 속에 그 해답이 있었다. 해경은 말한다. ‘영어의 Family의 어원은 가내노예라는 뜻이야. 아내, 자식 같은 혈연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논, , , 가축, 노예 같은 한 남자에게 속한 생산 도구이지..’ 그래서, 그래서 그랬구나.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그래서 우리 어머니의 한 평생이 고단했고,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고달프고, 우리 딸아이가 살 인생이 걱정 되는 것이었구나... 스무 살의 우수련이 과감히 집을 나왔을 때, 괜스레 내 속이 다 후련해졌다. 주인공의 선택에 응원을 보내며, 같이 손잡고 큰 길로 나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스무 살의 수련이 집을 나가고, 이 책의 뒷부분에서 밝혀지듯이 성재와의 결혼생활에서도 남편과 아이를 두고 집을 나와 혼자서 삶을 꾸리게 된 수련. 그 수련이 박차고 나간 집이라는 것은 여자의 인생을 옭아매는 편견과 억압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절규가 아니었을까. 내가 우수련의 그 스무 살의 나이로 돌아간다면 나도 한 번 쯤은 집을 떠나 나만의 방을 꾸리고, 나만의 길에서 방황해 보고 싶다. 만약 우수련이 그 집을 떠나지 않고 늘 살던 대로 적응하며 살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라고 힘주어 말한다. 스무 살 이기에 강행할 수 있었던 가출과 연극단원으로서의 실패적 경험과 성재와의 관계와 해경과의 관계. 집을 나옴으로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이, 주인공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수련의 일생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그래, 맞아. 스무 살의 삶을 인생 자체로 끌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생각했다. 성재와 해경이 만나는 자리에 우수련이 있었고, 그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주인공은 다양한 상황 속에 놓여 결국 수련은 수련만의 색깔을 찾게 된다. 주인공 수련의 스무 살의 행적이, 순종적인 여자의 일생에 도전하는 당찬 행위로 느껴지는 것도, 내가 못 가 본 길의 대리만족은 아닐까. 나도 일으키고 싶은 반란의 대리표출은 아닐까. 주인공 수련의 그 탈출이 우리 딸아이가 살 세상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위와 당위성이 조금 더 위상 되어지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 안 되는 걸까. 배가 고프다. 이 한 밤중에 배가 몹시 고프다. 주인공의 스무 살도 배가 고팠겠지. 미래에 대한 먹먹함과 주변 상황에서 받는 억압, 홀로 서고 싶어도 홀로 설 수 없는 운명에 가로막혀 스무 살의 수련은 늘 배고프고 고단했겠지. 주인공 수련은 우리를 대신해서 집이라는 틀을 깨고, 여자라는 틀을 깨고 나왔다. 수련이 살았던 그 스무 살 시절, 내가 살았던 그 스무 살 시절, 앞으로 우리 딸이 살게 될 스무 살 시절, 우리는 스무 살의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그 무엇인가의 틀을 깨려고 노력해야하는 운명이지 않을까. 우수련의 생을 보면서 을 나가 자기 자신을 찾아다니며 떠도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부디 부디 우리 딸아이의 스무 살 시절만큼은 배고프지 않기를, 속박 받지 않기를, 알 수 없는 억울함에 우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련의 스무 살이 기분 좋은 배고픔의 스무 살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스무 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 않은 수련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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