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역사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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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09.07.06 | 조회수 | 285 |
7월의 역사인물 "서희(徐熙)" 고려 광종 11년(930)년 3월에 갑과로 과거에 급제한 뒤 내의시랑(內議侍郞), 병관어사, 내사시랑평장사 등을 거쳐 고려시대 최고 통치기관인 문화부의 최고 벼슬인 내사령을 역임했다. 이처럼 정치적 활동에서 여러 중책을 맡았으나 이에 못지 않게 수많은 외교적 업적 이룩했다. 그는 광종 23년(972년) 십수년간 단절되었던 송나라와의 외교를 사신으로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외교적 활약은 993년에 대군을 이끌고 들어온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하여 이를 물리친 일이었다. 고려의 일방적인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이 소손녕으로 하여금 고려를 침공하게 되었고 이에 대하여 고려에서는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희는 거란의 침입의 원인이 영토의 확장보다는 국제적인고립에 벗어나려는 시도임을 간파하고 싸울 것을 주장했다. 소손녕이 안용진의 싸움에서 패하자 그와 담판하여 고려왕의 입조와 건란의 연호사용을 조건으로 하여 압록강 동쪽 여진의 거주지역 280리의 점유를 인정하는 화약을 맺고 군사를 철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서희의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 당당한 태도, 조리가 분명한 주장 등을 통해 군사적 충돌없이 외적을 물리쳤던 외교적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국초 고려의 영토가 서북면 방면으로는 청천강과 박천강선에 머물고 있었으나 994년 서희가 거란의 양해한 대로 압록강 동쪽의여진족을 축출하고 강동육주의 기초가 되는 성을 쌓고 민족의 생활권이 압록강을 경계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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