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산중고등학교 로고이미지

공지사항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작성자 *** 등록일 09.04.27 조회수 307
 

 충무공 탄신일(4월 28일)


1. 의의

  이순신 장군은 효성이 지극하고 부하와 민중을 사랑하였으며, 천품이 청렴결백하고 공정무사 하였으며, 투철하고 숭고한 애국애족의 일념의 삶을 살았다. 그의 필살 왜적의 기개, 임금에 대한 충성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충무공은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조국과 민족에 헌신한 신망 국활의 귀감이다.


 다음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인데, 그 난국에 처하여 주권 수호의 굳은 결의를 끝내 관철하였고, 또 명의 원군을 대하고도 결코 민족의 긍지를 굽히지 않았으니, 의연한 기상이 이에서 더할 수 있으랴!

 

  또한, 충무공은 거북선을 비롯한 여러 병기와 갖가지 새로운 병법을 창안하였고, 참담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과감히 승리를 쟁취하였던 창조와 개척의 정신을  본다.


2. 역사적 유래

  1545년 4월 28일 새벽에 태어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무예에 뛰어났던 장군은 32세 때 무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몸담으신 뒤 여러 차례 억울한 모함을 받으셨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맡은 바에 힘써 위급한 나라를 구할 힘을 기르셨다.


 장군은 마지막 싸움터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돌아가시면서 “나를 가려라, 그리고 이 북채를 받아  내가 치는 것처럼 북을 울려라. 이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저 원수의 왜적들을 우리 땅에서 깨끗이 내쫓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 이로다.” 이 때 장군의 나이 54세 1598년 12월 16일이었다.


 8.15해방 후 이 충무공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4월 28일에 탄신 제전을 거행해 오다가, 1966년 4월 박 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 분부로 현충사 경내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지고, 1967년 1월 16일 문교부령 제179호로서 4월 28일을 이 충무공 탄신 기념일로 제정 공포하였다.

이전글 중,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길라잡이
다음글 영동읍 중학교 전,재,편입학 계획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