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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슨 ☆
작성자 청주중 등록일 11.02.16 조회수 539
*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 ~ 1848]

영국 증기기관차 발명가. 

노섬벌랜드 출생. 광부 아들로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8세 때에 광산에서 일하고, 14세 때에 화부 견습, 17세에 뉴코멘 대기압기관(大氣壓機關)의 기관사가 되었으며, 18세 때 비로소 야학에서 학교교육을 받았다. 21세에 결혼하여 1803년, 후에 기술자로서 좋은 협력자가 된 아들 로버트를 낳았다. 이 무렵 이미 킬링워스광산의 수석기사가 되었고, 1805년 무렵에는 <기계박사>로 이름을 떨쳤다. 12년에는 킬링워스광산의 기관장으로 초빙되었다. 그 무렵 탄광에서는 석탄을 갱내에서 반출하는 방법으로 말에 트럭을 달아 끌게 했는데, 수송수단을 기계화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 무렵 증기기관을 이용한 수송방법을 연구하는 발명가가 많이 있었는데 증기자동차를 생각한 프랑스의 N.C. 퀴뇨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스티븐슨은 13년 증기기관차를 제작하고 이듬해인 14년 7월 25일 시운전에 성공하였다. 제1호 증기기관차는 그 뒤 개량을 거듭하여 25년까지 16대의 증기기관차가 제작되었다. 1821년 스톡턴-달링턴 사이 21㎞의 철도개통공사가 시작되자 이 공사의 기사장(技師長)이 되었다. 23년에는 2명의 공동출자자와 함께 세계 최초의 기관차공장을 설립하였으며, 이 공장에서 제작한 기관차 로커모션호로 25년 9월 27일 철도가 개통되었다. 최초의 열차는 38대의 차량을 시속 20∼26㎞로 운행하였으며 이것은 마차를 대신한 육상수송의 개막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맨체스터-리버풀 사이 45㎞에도 철도가 건설되어 이곳에서 사용할 증기기관차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는 아들 로버트와 함께 제작한 출력 13마력의 로켓호를 출품하여 우승하였고, 그 뒤 몇 년 만에 이 철도의 건설허가를 얻었다. 그 무렵에 <고압증기는 생명과 건강에 해로우므로 정부는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1830년 맨체스터-리버풀 사이의 철도가 건설되면서 미국·프랑스·독일 등에 이 새로운 육상수송수단이 확산되었고, 그는 그 뒤에도 벨기에·에스파냐 등의 철도건설에 종사하였다. 47년에는 철도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버밍엄에 세계 최초로 기계학회가 창립되어 그 초대 회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체스터필드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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