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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정대지국사비
작성자 용산초 등록일 07.04.16 조회수 97

억정대지국사비

 
◎ 시 대 : 조선
◎ 유 형 : 석비
◎ 지 정 : 보물
◎ 지정번호 : 보물 제16호
◎ 지정일자 : 1934. 8. 27
◎ 소재지 :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360
 

제액은「대지국사비명」이라 전서하였고 다시 비제를 유명 조선국 충주 억정 선사고고려국왕사시대지국사비명병서「가정대부예문춘추관학사도평의사사사겸성균사성신박의중봉 교찬」이라 하였다.

국사의 휘는 찬영, 자는 고저, 호는 목암 속성은 한씨이며 고려 충숙왕 15년(1328) 정월 8일에 탄생하여 14세 때에 중흥사에 들어가 원증국사에게서 5년 동안 수법하였다. 또 고려 조계산 제14대 조사인 정혜국사의 가지산 총림에 나아갔으며 유점사 수자화상의 훈도를 받기도 하였다.

여러절의 주지를 거친후 공민왕의 부름을 받아 양가도승록대사가 되었다. 그후 석남사, 월남사, 신광사, 운문사 등이 주지를 거친뒤 내원에 불려 들어가 정지원명 무애국일선사의 호를 받고 우왕초에 가지사의 주지로 국일도대선사가 되었다. 우왕 9년(1383)에 왕사가 되고 창왕 때도 왕사로 있다가 공양왕 2년(1390)에 억정사에서 입적하였다.

공왕 때의 시호는 지감 탑호는 혜월원명이며 조선 태조때 시호를 대지 탑호를 지감원명으로 고쳤다. 대지국사비는 조선 태조 2년에 세운 것으로 박의중이 글을 짓고 혜조국일도대선사가 쓰고 승려 혜공이 각자 하였다. 비의 형식은 매우 간략한 것이며 대석도 윗면에 2단의 신좌를 새긴 장방형일 뿐이고 개석이 없이 신석도 윗변 좌우를 크게 귀접하였을 뿐이다. 전통적 수비요식이 쇄퇴하는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걸친 과도기적 소작이므로 조형상 특색을 갖추는 여유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비문은 신석의 4면에 해서로 음각되어있고 말미에는 문승들 뿐아니라 속문도의 이름도 보이는데 판문하 홍영통, 문하시중 이색, 시중 심덕부, 판개성 우인열, 정당문학 박형 등 20여명의 이름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고 건비관사원과 충주목사의 이름도 새겨져 비를 세우기 위한 광범한 체제가 형성되었던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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