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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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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원 등록일 16.06.10 조회수 88

대상 :

지은이 : 나성훈

출판사 : 예림당


4교시때 선생님이 도서실에가라해서 같는데 [영웅이야기]라는책이 마음에들어서 읽게되었다.


안중근의사는 중국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동무들에게 총을 쏘고 일본군에 잡힌 분이시다

아주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아직살아 계시다면 아주 멋진 군인으로 계실까 ?

안중근의사는 1908년 러시아 지역의 의병들과 부대를나눠 국내 진공 작전을펼쳣다

내가 군대를간다면 다른나라 군인들과 공을세우고싶다.

이때 안중근의 부대는 함경북도 홍의동과  신아산에서 일본군과 전투를벌엿다

신아산이 지금 어떤모습일까 궁금하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조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빼앗고 고종을 퇴위시켯다.

이때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졋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할생각이 없지 않앗을까 궁금하다.

이처럼 일본은 강제로 불평등 조약을 맵어 행정, 사법권을 빼앗고 군대를 해산하여 조선을 지배햇다.

일본이 나쁘다는건 예전부터 알앗지만 이정도일줄은 정말몰랏다.

그러자 국내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서 의병이 들고 일어나 무장 항일 투쟁을벌여 나갓다

정말 이토는 왜태어 낫지 라는생각이든다.

안중근의 부대는 용감히 맞섰으나 5000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이길 수 없었다

안중근에 부대가 좀더 많앗으면 이겻을거라고 생각한다.

안중근과 몇명의 의병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러시아로 돌아갔다

이때 영화처럼 살아낫더라면 좋앗을것이다.

안중근은 다시 의병을 조직하려고 나섰으나 포로를 살려 준 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포로를 안살려 보냇더라면 인명피해는 없엇을것이다.

1909년 3월, 안중근은 러시아 연추(크라스키노) 카리마을에서 11명의 동지들과 단지회를 결성햇다

11명에 동지들도 애국심이 많앗을것이다.

10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이토가 만주에 온다고 하엿다

이때 안중근은 그생각을하지않을까[이토사살]

대동공보의 유진율. 이강의 도움과 우덕순이 동참하면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계획은 급물살을 탓다.

1909년 10월26일 드디어 이토를태운 열차가 하얼빈 역에도착을햇고 이토히로부미는 회담을마치고 열차에서 내렷다

이때 죽을수도잇다는 생각은 못햇을것이다

이토가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군중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이 총을쏘앗다

안중근은 죽을각오로 햇다는걸 대단하게 생각한다

안중근은 3발의 총알을 이토에게 명중시켯다

아주대단하다.

뤼순감옥에 갇힌 안중근은 이듬해 2월부도 관동 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앗다


나도 안중근의사를 본받고 싶고 만약에 일본이 또침략을 한다면 나도 안중근의사처럼

용감하게 나라를 지키고싶다 안중근의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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