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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의 작품에 나타난 ‘상실’의 미학
작성자 *** 등록일 13.04.18 조회수 231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의 작품에 나타난 ‘상실’의 미학

허스트는 ‘yBa(young British artists)’ 탄생의 초석이 된 ‘프리즈(Freeze)’전(1988)을 계기로 미술계에 등장했으며,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개념적이고 충격적인 작업을 통해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작업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부 연구된 경우에도 개인사나 형식주의적 분석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작품에 나타나는 파격은 충격을 주기 위한 전략으로만 취급되어 죽음에 내포된 의미는 간과된 채 선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존의 단편적인 해석으로는 그의 작품이 지니는 미술사적 의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죽음의 주제가 미술사의 오랜 주제라는 점에 주목하여 지난 20여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부여된 숙명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존재론적인 사유를 이끌어 왔고 미술사에서도 오랜 영감의 원천으로서 각 시대마다 많은 작가들이 이를 작품의 주제로 삼아왔다. 또 허스트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후반의 영국은 대처(Margaret Thatcher, 1925-) 내각의 긴축재정과 과감한 개혁으로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였고 미술계 내에서도 미술기관과 젊은 작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세기말적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전통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 허스트는 이를 고정된 내용이 아닌 상반된 가치들의 공존이라는 열린 구조를 통해 제시하는가 하면 예술가 주체를 완전히 해체하는 작업 양식을 드러냄으로써 세기말의 상실감을 경험하던 동시대인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었다.

허스트는 작품에서 파리나 나비의 일생을 통해 생의 주기를 대상화하고, 동물의 사체를 관람자에게 대면시키거나 유약한 인간의 생명을 떠있는 공으로 표현함으로써 삶 이면의 죽음 혹은 죽음 이면의 삶을 말한다. 또한 그는 과학, 특히 의학을 생명 연장을 위한 인간적인 수단으로 지목하고, 이를 사후세계를 제시하는 종교와 비교하여 작업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키는 한편 이 모든 요소들이 지니는 한계를 제시함으로써 희망과 좌절의 감정을 교차시킨다. 나아가 허스트는 유일하고 영속적이었던 예술가 주체 개념을 ‘차용’의 방법을 사용해 해체함으로써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예술가의 원본성(originality) 상실까지 이야기한다. 순간과 영원, 아름다움과 추함, 종교와 과학, 원본과 복제 등 이질적인 요소들의 병치는 삶과 죽음의 딜레마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자 작품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허스트 특유의 장치이다. 그가 yBa 작가들 중에서도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로서 독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바로 이러한 동시대적인 방법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 과정을 통해 본 논문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 전반에서 지배적인 죽음과 상실의 의미를 짚어내고 이와 더불어 그동안 미술사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그의 작업에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그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를 정리하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 논문을 계기로 향후 허스트의 작품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논의들이 진행되어 현재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허스트의 작업이 발전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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