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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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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삶과 문학 (1) 가정 <학습자료 : 박목월의 삶>
작성자 운동중 등록일 09.04.29 조회수 116
 
< 박목월님의 육성 대담 회고록>
 

< 내고향 경주>


나는 경주가 내 고향인 것이 자랑일 뿐만 나이라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초기 작품들은 대개 경주가 가지고 있는 풍토를 중심으로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5월 해질 무렵, 산그늘이 길게 늘어지고 강물을 건너가는 퍼런 옷고름을 단 여인들의 아슴아슴한 모습이나 혹은 경주에서의 특유한 바람 냄새, 흰 탑 위에 내리 쪼이는 햇빛, 폐허 위에서 싹트게 된 나무 싹들, 이것이 초기에 있어서의 내 작품에 바탕이 되어 왔고 남과 다른 나만의 정서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시절에 잊혀지지 않는 일은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때 사귄 그 여인의 모습이 평생 잊혀지지 않고 늘 가슴에 젖어 있게 되는 군요, 어느 경우에는 그 여인이 꽃과 같이 생각되기도 하고 코스모스와 같이 생각되기도 하고 또 어느 경우에는 바람과 같이 생각되는 하나의 변용,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살아납니다.

기독교 계통의 개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과는 다 친했는데 그때 내가 각별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지금은 목사님이 된 친구와 의사가 된 친구가 있습니다. 현재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중학교를 졸업한 지가 벌써 30년이 더 되어 가는데 요즘도 꿈에서 더러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꿈에서 만나 놓고 보면 나는 늙었는데 상대는 여전히 젊은 그대로이니 이상한 감이 들더라고요.



<문학 수업>


본격적인 문학수업이랄까, 출발이랄까 하는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나는 어릴 적 깊은 산골에서 자랐기 대문에 문학 서적이라는것을 읽어보지 못힜습니다. 중학교 들어와서야 비로소 문학 서적이라는 것을 읽게 되었는데, 문학의 화두라는 것이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고 감정을 전달해주는 문제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학이 감정을 전달해 준다는 것을 내가 중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밝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발견이 내 평생에 있어서 나를 시인으로 만들게 한 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나 문장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감동적인 면에서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 게속해서 시를 써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감동적인 문장을 통해서 내 감정을 만인에게 전달해 봤으면 하는 엄청난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체적인 습작 시대는 20대 전후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문학을 하겠다, 혹은 시를 쓰겠다고 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변치 않는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문학청년시대를 돌이켜 보면 "생각"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말이 어느 경우에 있어서는 사랑이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고 하는 8부 정도의 내성적인 면에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이라는 말로 바꾸는, 8부 정도로 표현하게 되는 내성적이고 여성적인 세계, 이것이 내 청춘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20대에 있어서 생각이라는 말, 그 한마디의 말이 가지고 있는 우주 안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등단과 시세계>


문단에 데뷔한 때가 1938~39년경이었습니다. 문장이란 잡지가 나와서 어느 친구의 권고로 작품을 투고했습니다. 당시에 문장의 추천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길처럼」이라는 것이 내 첫 추천작품이 되었습니다. 한 부는 잡지사에 투고해 놓고 다른 한 부는 신문광고에 냈는데 내 작품이 발표된 것입니다. 그때 내 이름을 박목월이라고 처음 쓰게 되었습니다. 「길처럼」이라는 시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이 가지고 있는 내성적이고 여성적인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내 시세계는 대개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의 청록기, 내 첫 시집인 『산도화』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은 태반이 경주라는 향토가 모티브가 되어 있고, 청춘의 애절한 정서를 노래한 것입니다.

이게 첫 단계의 시세계고 그 다음 30대부터 40대 전후해서 내 인생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전처럼 정형율을 가지고 노래하기보다는 인생 그 자체를 생각하면서 풀어쓰는 경향으로 시를 써왔습니다. 이것을 모아놓은 작품들이 『난 기타』라는 제 2시집입니다.

그 후, 제 3단계의 시세계에 있어서 인생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시를 표현해 나가는 표현형식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40대 이후에 와서 비로소 대화적인 것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대화적일 때 가장 생동적이고, 또 대화를 주고받는 말이 말로써 하는 구실을 가장 생기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시에 대화적인 형식을 살려 보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청록파 시인들의 만남>


조지훈 씨하고는 해방 전에 한 번 만났습니다. 그분에게서 경주에 한 번 놀러가겠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일제 말기의 그 답답한 시대에 지훈씨는 경주에 와서 옛날 고적이라고 보면서 자기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 보겠다는 뜻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곧 답을 내었더니 조지훈 씨가 오게 되었는데 지훈 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깃발을 들고 경주 역전에 갔던 겁니다. 그래서 조지훈 씨와 깃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단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박두진 씨는 해방 후에 박두진 씨가 어류문학사에서 일을 하고 계실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볼일이 있어서 어류문학사에 들어갔는데 책상 앞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보고는 "틀림없이 저 분은 박두진 씨다" 하고 알아버린 것입니다. 또 박두진 씨도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아! 저 분은 박목월 씨다"라고 알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남이 생각하면 이상한 일 같지만 시 작품을 읽고 있으면 그 저자에 한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두진 시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처음 만나고도, 다른 사람의 소개를 통하지 않고 두진 씨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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