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의 사랑을 받던 이수에게 원나라를 다녀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몇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난 지 얼마 후였다. 수행원 중 한 명이 이수에게 굶주린 말이 배가 고픈 나머지 주저앉아 더 이상 길을 재촉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아뢰었다.
때마침 겨울이라 들판의 풀은 노랗게 말라 있었고, 마을은 아직 좀 더 가야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이수의 눈에 추수하여 쌓아둔 낟가리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부하들에게 낟가리 한 단을 가져오게 하여 말에게 먹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낟가리 한 단이 비단으로 치면 얼마나 되느냐고 수행원에게 물었다. 이수는 말 먹이 값을 비단으로 보상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자 수행원이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비단을 놓고 가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분명 낟가리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그것을 주워 갈 것입니다. 그러면 보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수는 손수 옷감을 잘라 낟가리단에 가지런히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사정을 적은 쪽지 한 장을 살짝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도 실은 이 비단을 다른 사람이 먼저 가져가는 수가 많다고 생각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구나.”
하찮은 낟가리 한 단과 양심을 바꿀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을 깊이 새겨보면 자신을 세우는 길은 스스로의 마음을 가꾸어 기르는 데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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