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씨는 살림을 하면서 남편의 출근을 돕고 아들딸의 도시락을 챙겨주며 등교할 수 있게 도왔다.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가만히 자신의 몸을 보니까 근육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동을 이용해서 팔을 올려보면 겨우 가슴께까지 올라갔다 금방 푹 떨어졌기에 두렵고 슬픈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을 무렵 그녀에게 이 병이 찾아왔다. 그래서 남편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며 바쁘게 살림을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녁식사는 밖에서 해결하는 게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되었다.
살림을 안 해 본 남편이 장을 본 봉투를 풀어놓으면 음료수와 스낵, 인스턴트식품이 나오고 야채라야 감자 몇 개와 양배추면 끝이었다. 마음은 다 잡지 않으면 어느새 황량한 벌판으로 내몰리게 되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삶의 윤기를 잃어갔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병이 나서 가정을 잘 꾸리지 않으면 결국 가정이 파괴될 거라고 느꼈고, 건강과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었다.
강남 S아파트에서는 매주 목요일이면 오전 여덟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치유의 은사를 받은 권사님을 모시고 환자들이 모였다. 이 모임의 특징은 서로의 신체를 꼬집어 주는 것으로 손에서부터 시작하여 어깨, 옆구리, 허벅지, 머리 속까지 꼬집는데 무척 아팠고 익숙지 않아서인지 이정희 씨는 짜증이 났다. 그리고 두 시간 쯤 지났을까…, 이정희 씨 차례가 되어 권사님 앞으로 나가 자신의 증세를 이야기했다. 주변이 술렁거렸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람이 왔다 갔다고 했다. 이정희 씨는 사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ALS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자신 외에 또 어딘가에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이정희 씨는 친구가 ALS병을 앓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를 통해서 확인한 자신의 슬픔과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하느님만 믿으면서 이 병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정희 씨에게 나타난 이 병의 첫 증세는 근육의 이상인데, 양쪽 팔뚝의 근육이 톡톡 튀곤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일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팔의 상하운동이 불편해진 것을 느꼈다.
작은 증세가 있을 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나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지나간 일이 결국 큰 병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겁이 났다.
이정희 씨는 양팔의 증세가 급속도로 나빠져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들자 억울함을 느끼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왜 나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방송작가였던 친구가 이정희 씨와 함께 병원 순례를 시작했다. 이정희 씨는 병명을 확인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일반인하고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고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 그러나 말을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괴롭고 일반인을 볼 때마다 질투가 나서 일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이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갖고 싶다.
1994년 겨울, 처음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 4년여가 지났다. 원통함과 분노, 슬픔과 신세 한탄, 가족들에 대한 야속함까지 이정희 씨 마음은 온갖 어둠과 혼란에 싸여 있었으며 때로는 좋다는 곳을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현실을 떨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를 붙들고 통곡하며 외친 딸의 한마디,
“엄마, 나는 엄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라는 말을 듣자 울분과 괴로움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다.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이정희 씨는 고마운 심정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정희 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했고, ALS협회 창립을 위해 모금운동을 했으며 MBC에도 출연했다. 5월 27일, 드디어 한국ALS협회 창립총회가 열려 총회에도 참석했다.
이정희 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답답해도 병을 고치겠다는 욕심 때문에 점점 적응해 나갔다. 병원 첫 날부터 촬영이 시작된 MBC의 프로그램은 변화되는 상태를 두 주일마다 기록해서 방송하는 다큐멘터리였다. ALS환자들이 이정희 씨 병실에 찾아왔고 전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정희 씨는 주변에서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병이 나을 수 있도록 노력을 했지만 어느 날은 점점 나빠져서 숨을 몰아쉬며 통곡했다. 그러나 이정희 씨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참았다. 왜냐하면 병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죽음에 대해 상상을 해보았는데 정말 두려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고, 아플 때마다 혹시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겁이 많이 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루게릭 병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육신은 서서히 멈추어 가는데 정신과 마음만이 멀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느님께서는 시험을 하시려고 병을 내리시는 것 같다. 나는 청각을 잃었지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며 감사한다. 이정희 씨에게서 좌절과 괴로움을 극복하며 굳은 의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정신을 배웠다. 세상을 다 용서하고 세상을 다 사랑하게 한 기도였던 ‘생명의 양식’을 기억하며 이정희 씨의 삶에 하느님의 축복과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