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렌트 전원주씨의 감동적인 글(꼭 필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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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재인 | 등록일 | 14.08.05 | 조회수 |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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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렌트 전원주씨의 감동적인 글
내가 키가 이렇게 작은 게 어릴 때 못 먹고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 5학년 때부터였는데 그 때 제일 많이 한 일이 물지게를 지고 식수를 길어 나르는 일이었다. 인천에 살 때였는데 그 곳은 짠물이 많이 나서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 무거운 물지게가 나를 짓눌러서 이렇게 키가 안 자란 것 같다. 밥도 짓고 등등 무지무지하게 힘든 나날이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우리를 강하게 교육시키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계모"라고 믿었을 만큼 어머니에게 많이 혼나고 얻어맞고 자랐는데, 그 땐 울면 더 맞았고 만약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그 날은 완전히 죽는 날이었다. 여러분도 자녀를 키울 때 강하게 키워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나약하고 자신의 실수 등에 대해 변명하는 사람은 절대 출세 못한다. 우리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했다. 떡도 팔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만들어 내다 팔았다. 그러던 끝에 돈을 모아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사하는 전날 밤에 짐 보따리를 전부 싼 상태에서 "원주야~" 하고 나를 부르시는 것이었다. 허구한 날 쥐어박고 꼬집고 꾸짖고 하시던 분이 처음으로 나를 다정하게 부르시는 것이었다. 안방으로 건너가니 어머니께서는 내 손을 따뜻하게 꼭 잡고 "큰 딸,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서울 가면 너 하고 싶은 것 전부해 줄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에 포목상을 내고 장사를 하셨는데,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을 만큼 수완이 좋았다. 내가 성장해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가정부 역만 20년을 했다. 주인마님만 강부자, 여운계, 사미자 등으로 수도 없이 바뀌어도 나는 영원한 가정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학 출신(숙명여대)이라고 하면 목젖이 보이게 놀라고, 이렇게 작은 전원주도 운전하고 다닌다고 하면 더 놀란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교편을 잡았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잘못한 일이 있었는데, 훈육선생이 그걸 보고 "너희들 똑바로 서 어금니 꽉 물어" 하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여학생들도 뺨 정도는 다 때렸으니까. 그러면서 학생들을 한 명씩 뺨을 때리는데, 옆에 섰던 나도 학생인 줄 알고(키가 작으니) 뺨을 가차없이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진 채로 결심을 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를 퇴직했다. - 1 - 뭘 할까 하다가 바로 그 당시 동아방송에서 공모했던 성우 모집에 응했다. 하느님은 정말로 공평하셔서 나는 목소리 하나는 타고 났었다. 프로그램을 맡아서 방송을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고와서 꽤 인기였다. 내 목소리만 듣다가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방송국에 와서 내 얼굴 보고 졸도한 남자 여럿 있었다. 내가 TV 방송에 출연할 때 얘기를 하겠다. 세상은 엄청나게 치열하다. 흐지부지 목적 없이 살면 절대로 좋은 길로 못 가고 운전하다 1분 안에 세 번 차선을 바꾸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탤런트는 굳건한 의지를 가져야 산다. 대사를 다 외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잊어먹지 않도록 암기 연습도 죽도록 하고, 연습 시간을 확보하려면 시간 관리에 철저 해야 한다. 그래도 떨면 대사를 까먹기 마련이라 배포까지 키워야 한다. 우리는 녹화에 3번 지각하면 쫓겨나고, 같은 장면 NG 세번 내면 다음부터는 안 써준다. 밥을 씹으면서 연기하면 대사를 까먹을까 봐 씹지도 않고 얘기하다 밥알이 다 튀기도 하고. 내가 무당 역을 맡을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대사 중에 가장 힘든 것이 귀신 이름을 7가지 외우는 것이었다. 일주일 내내 연습했는데 연기 도중에 예상치 않았던 꽹과리 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바람에 그만 까먹고 말았다. 그 때부터 연출자들 사이에 "전원주는 새대가리"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전원주 = 가정부, 이미지가 굳어버렸다. 밑바닥 생활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마님 역할은 비스듬히 누워서 "밥상 들이거라" 하는 말 한 가지면 끝나지만 가정부 역은 밥상 들고 방문을 10번 이상 들락 날락 거리고, 상이 바닥에 소리 안 나게 놓아야 하는 등, 노동도 그런 노동이 없다. 게다가 애까지 업은 채로 밥상을 나르는 역이 있는 날이면 정말 노동이었다. 그러고도 집에 오면 그 장면 하나라도 보려고 TV를 켜면 안 나올 때가 부지기수였다. 편집된 것이다. 우리들은 방송에서 편집되면 그나마 한 푼 출연료조차 없는 시절이었다. 그 때문에 결혼해서 애를 다 키우면서까지도 나는 우리 어머니께 얻어맞고는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TV 에 안 나오거나 나와도 가정부에다. 그나마 1, 2초면 사라진다..."등등 어머니 부아를 돋구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랬다. "이 년아 다 괜찮은데 어째 너 하나가 이리 속을 썩이냐. 너만 잘 풀리면 원이 없겠다..." 그러나 나는 돈 한 푼 없었어도 매일같이 방송국에 출근했다.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아들놈이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아들놈이 보고 싶고 축하해주고 싶어서 학교에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기에 집에 왔더니 벌써 돌아와 있는 것이었다. 그 때 아들 녀석이 한 말, "엄마는 뭐 하러 학교에 와 가지고 망신을 시키고 그래..." 나는 묻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애들이 나를 보고 "식모 왔다!"라고 놀렸을 게 분명했다. 그 때 나는 정말로 탤런트 생활을 때려치울까 밤을 새서 고민했었다. - 2 - 성공한 지금에 와서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공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마라톤의 원칙이다. 과욕 부리지 않고 목표를 정하고속도 조절하면서 꾸준히 뛰는 것. 둘째 날씨의 원칙이다. 비바람, 폭우가 몰아치는 날이 있어도 어느 날 분명히 해는 뜬다. 희망과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말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고 오기를 갖고 인내하라. 셋째 합창의 원리이다. 사람들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노래방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누구인가? 마이크 독점하는 사람, 남이 노래 부르는데 꼭 끼어들어서 노래 망치는 사람, 악만 바락바락 쓰는 사람. 흥겨운 분위기에 처진 노래 부르는 사람. 넷째 등산의 원리이다. 처음에 산에 오르기로 해도 출발하기가 망설여진다.그 때 과감하게 일어나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힘도 들고 땀도 난다. 그 때 이 정도만하고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 사람은 정상의 맛을 영원히 못 본다. 끝까지 올라가면 모든 것이 발아래 있는 법이다. 정상의 맛은 아무나 느끼지 못한다. 참고 꾸준히 목표만 바라보고 인내를 거듭할 때 기회가 오는 것이다. 여러분도 건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는 시원한 웃음과 노래가 제격이다. 아울러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돕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랜 고생 끝에 인기인이 되었다. CF 도 줄줄이 찍었고. 20년을 참고 뜬 태양은 지지도 않더라. 여러분도 인내하고 밀어 붙이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지금 난 일년치 스케줄이 새카맣다. 오늘만 해도 네 군데 일정이 있다. 강연 2번, 녹화 2번. 일이 많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일이 없을 때 힘들고 피곤한 법이다.
노력하는 사람은 작아도 커 보인다. 얼굴이 이뻐도 행동이 미우면 박색이고 얼굴이 미워도 하는 짓이 이쁘면 양귀비로 보인다. 살면서 근면하고, 절약하고, 원칙을 세우고, 남편과 자식들한테 잘해주고..해야 할 것이 많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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