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산 만행-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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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정희 | 등록일 | 11.03.07 | 조회수 | 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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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은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 산 묘역에서 미리 설치된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폭탄테러사건이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순직하고 기타 수행원들이 부상당하였다. 사건 직후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편집] 경과1983년 10월 8일 대통령 전두환은 공식수행원 22명, 비공식수행원 등을 데리고 동남아 5개국의 공식 순방길을 출발했다. 미얀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순방길의 첫 방문지였으며 이 날은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10월 9일 전두환은 행사에 참가차 이동중이었고, 도착 전이었던 전두환은 목숨을 구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오전 10시 28분에는 애국가 예행 연습 중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한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 기자들이 미리 대기해 있다가 순직하고 말았다. 당시 버마는 사회주의 성향으로 대한민국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가까운 국가였으나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킨데 대해 격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교를 즉시 단절하였다. 또한 미얀마 경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의 범인 3명 가운데 신기철을 인근에서 사살하고, 진 씨라는 성만 알려진 한 사람과 강민철 두 명을 체포하였다. 진은 이듬해 사형이 집행되었고, 강민철은 미얀마에서 복역 중[1] 2008년 5월 18일 53세를 일기로 중증 간질환으로 사망하였다.[2] 사건 당일로 전두환은 모든 순방길을 취소하고 특별기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파편화된 시신들은 수습되었으며 대학의 가을 축제들이 모두 취소 및 연기되었고 KBS, MBC 등의 방송국은 쇼 및 오락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등 대한민국은 슬픔에 빠졌다. 현장에서 희생된 서석준 부총리 등은 합동국민장이 거행되었다. 이 사건으로 미얀마와 서사모아 등의 국가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단절했다. [편집]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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