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명문 가문인 덕수 이씨의12대손이었습니다. 이순신의 할아버지가 벼슬살이를 할 때, 나라에 큰 정변인 기묘 사화가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많은 충신들이 억울하게죽거나 벼슬을 빼앗겼 습니다. 이순신은 부모님의 사이에서 4형제중 셋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순신은 글방에서 글공부를 끝내면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올라가 전쟁놀이를 즐겨했습니다. 이순신은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못하였습니다.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 스스로 나서서 혼내 주었습니다. 이순신은 글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또한 무예도 부지런히 익혔습니다. 이순신이 스물여덟 살이 되던해,무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이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순신은 활쏘기,창던지기,칼쓰기 3종목에서 모두 1등을 하였습니다. 4년 뒤, 이순신은 서른두 살의 나이로 무과 시험에 다시 응시하여 당당하게 장원 급제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다음 해에는 두만강 입구에 있는 녹도까지 지키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 곳은 언제 오랑케들이 침입 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였습니다.히데요시는 조선의 정세를 살피면서 침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 습니다. 그 해 4월 13일, 마침내 일본은 조선침략을 시작하였습니다. 거북선은 왜적을 물리치는데 가장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총은 창이나 활보다 사정거리가 훨씬 길어서 멀리 있는 것까지 맞힐수 있었고,그 위력 또한 대단 하였습니다. 마침내 왜군은 임금이 있는 한성 까지 위협 했습니다. 선조 임금은 할 수 없이 피란을 떠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뱃머리를 영등포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에게 왜선 10여척이 사천근방에 쳐들어와서 왜선을 무찔렀습니다. 싸움은 아군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6월 4일,다시 당항포 앞바다에 진을 쳤습니다. 왜선 26척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 장군은 포구에 4척을 숨겨 두었습니다. 7월 15일 새벽, 원균은 쳐들어온 왜군에게 다시 패하고 얼마 남지 않은 배까지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 도망치던 왜선에서 날아온 총알이 이순신 장군의 왼쪽 가슴을 꿰뚫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총에 맞은 어깨를 감싸고 비틀거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얼른 방패로 내 알을 가려라. 싸움이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마라. 자, 어서 내 대신 깃발을 흔들어라. 내 일은 걱정 말고 다들 가서 싸우거라!" 이순신 장군은 눈을 부릅뜬 체 머리를 떨어 뜨렸습니다. 쉰네 살을 마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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