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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4-2 박주원>
작성자 박주원 등록일 10.08.27 조회수 8

누구나 안익태 선생님을 떠올리면 ‘애국가’가 떠오를 것이다. 일본의 지배 안에 그 시절 우빛내기 위하여 훌륭한 일을 하신 것이다.

1906년 12원 5일 평양에서 태어나셨다. 안익태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으셔서 1914년 초등학교에 입학하시고, 1918년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음악 공부를 하셨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삼일운동 수감자 구출 운도에 참가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잡힐 번 하지만 마우리 박사의 도움으로 벌 대신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하게 된다. 1930년 안익태 선생님은 일본의 도쿄 국립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신시내티 음악 대학에 입학하신다. 세계 곳 곳으로 연주를 하며 좋은 일도 일어나고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만 안익태 선생님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헤쳐 나간다. 그러다 1936년, 애국가를 작곡 하시고, 1938년, 한국 환상곡을 초연, 1955년, 교향시 강천성악을 작곡하신다. 이제는 세계가 알아주는 지휘자가 되신 안익태 선생님은 그 동안 여러 가지의 피로가 쌓여 결국 세상을 떠나신다.

애국가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이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절 우리나라와 민족의 대한 뜨거운 애국심을 표현한다. 안익태 선생님께서 온갖 어렵고 힘든 일들을 헤쳐 나간 것과 같이 애국가도 온갖 어렵고 힘든 일을 헤쳐 나가 우리나라의 애국가로 당당히 자리 잡은 것이다.

‘안익태 선생님께서는 조국 즉, 우리나라의 대한 충성심을, 애국심을 어떻게 표현 하셨는가?’

그 대답은 ‘음악’이다. 안익태 선생님은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훌륭한 지휘자가 되어서 세계의 널리 알린 것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여 우리나라의 음악을 발전을 시키신 것도 모두가 안익태 선생님의 충성심과 애국심이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일들은 너무너무도 많지만 나의 생각은 안익태 선생님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익태 선생님께서는 음악으로 조국을 사랑하셨고, 음악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의 알리셨고, 음악으로 세계와 경쟁하지 않고 모두를 하나로 모아 지금 우리들의 가슴에 큰 사랑의 별을 박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뒤를 이어서 앞으로의 후손들을 위해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서 다시 한 번 세계 모두가 하나로 될 수 있음을 꿈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인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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