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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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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생활 예절
작성자 김민희 등록일 13.06.19 조회수 109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상의 온갖 지식을 공부한다. 그리고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조선시대 아이들은 '몸에 대한 공부', 즉 예절을 배운 다음에야 비로소 책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인성으로 평가를 받았다. 예절교육이 잘 돼 있어야만 어려운 세상 이치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다.

 

MBC-TV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가 장안의 화제다.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도 재미지만 성격이 제각각인 아이들과 교육 방식이 다른 아빠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좌충우돌하는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아이가 있다. 바로 가수 윤민수의 아들 윤후다. '국민 아들', '국민 귀요미', '국민 조카' 등 윤후를 말해주는 다양한 별명에는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이 된 아이에게 어른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윤후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들 중에서, 아니 프로그램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인사를 잘한다. 인사성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조차 윤후의 인사성에 관해서는 이견의 여지없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윤후의 인사는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다. 시켜서 하는 억지 인사거나 습관적으로 하는 기계적인 인사가 아니다. 어린아이의 인사라지만 진정성이 묻어난다. 밝은 표정에 "아저씨!", "삼촌!", "민국이 형!" 하고 인사를 하는 상대방을 확실하게 지목하고 약간의 안부까지 인사말 앞뒤에 붙인다.



"인사도 참 잘하는구나!" 하고 절로 칭찬을 하게 된다. 또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배려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벌칙으로 허름한 숙소를 배정받아 울고 있는 민국이 형에게 자신이 배정받은 집과 바꿔주겠다며 나서는가 하면, 내기에서 이기더라도 내기에 진 친구들을 배려해 잘난 척하지 않고 친구들을 칭찬하는 말을 해준다. 여덟 살짜리 사내아이의 마음씨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윤후가 애어른 같은 것도 아니다. 지극히 아이다운 말투에 천진한 행동은 귀엽기만 하다. 윤후, 이 아이의 예쁜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이를 예쁘게 만드는 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윤후는 예절교육이 참 잘된 아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윤후의 인사성과 배려를 보면 아이의 인성을 알 수 있으며 윤후 부모의 자식교육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예절교육이라고 하면 댕기머리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청학동을 연상하며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한다. 현대의 교육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틀렸다. 그 어느 때보다 예절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예절이란 무릇 시대를 불문하는 하나의 교육적인 가치다. 예절은 단순히 인사법이나 식사 에티켓 등 기능적인 방법을 익히는 것이란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틀렸다. 예절은 절제인 동시에 배려다. 예절은 공부의 첫걸음이다. 왜냐하면 예절은 마음가짐의 정돈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예절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고, 마음이 정돈되지 못했다는 것은 가정교육, 즉 가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설령 아이가 학교 공부를 잘해 성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예절교육이 안 돼 있다면 비뚤어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흔히 학교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은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 공부가 지식을 줄지언정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까지는 가르쳐주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우등생은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또한 예절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예절교육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를 가진 오감 발달 교육이다. 방법을 안다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절교육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또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익힐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절교육은 가정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가정교육이 곧 예절교육인 셈이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시작하자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예절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 것일까. 요즘 시대에 맞는 예절교육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조선시대의 어린이 예절교육서인 「동자례(童子禮)」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동자례'란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가 배우는 예절'이라는 뜻을 가진, 조선 중기의 문신 김성일이 사숙에서 동자들에게 가르치는 예절을 모아 만든 책으로 일종의 예절 교과서다. 오래된 옛날 책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의 규모와 방침 그리고 학생의 전인교육을 그 목표로 완전한 인격을 육성하는 방법에 관한 지침이 돼주고 있으며 예절교육의 의의와 방법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예절교육이라고 하면 많은 부모가 다소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조들이 생각하는 예절은 그렇지 않았다. 「동자례」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것부터 머리를 빗는 것, 옷을 입는 것까지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뿐만 아니라 앉고 서고 걷는 것까지 예절의 범주로 보았다. 나아가 말하고 대답하고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주변을 정리하는 것까지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행위로 보고 바른 생활을 제시하며 가르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먹고 마시는 밥상머리 교육을 매우 강조한다는 것이다. 식사는 인간을 동물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본능적인 욕구와 관련된 행위다. 배가 고파서 죽을 수도 있다. 먹는 것은 생존이며 먹고 싶은 욕구, 즉 식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원초적인 욕구다. 예절이란 먹는 행위로부터 시작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이 부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닌 본성을 버리지 못한, 즉 예절교육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밥상머리 교육은 시대를 불문하고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고 예절교육의 첫걸음이 된 것이다.



내로라하는 세계 유수의 명문가도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했다. 그중 미국 케네디가의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동자례」에 보면 밥상을 앞에 두고 먹을 때는 밥상과 거리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말고, 조용히 수저를 들어 차례로 식탁 가운데에 두고, 급하게 먹지 말라고 나와 있다. 또 다른 사람과 음식을 먹을 때는 배부르도록 먹지 말며, 손으로 만지작거리지 말며, 밥을 뭉치지 말며, 남은 밥을 그릇에 다시 가져다놓지 말며, 한 입에 크게 집어 넣지 말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 말라'라는 것은 이 밖에도 많다. 당장 문자를 해독하면 모두 다 번거롭고 쓸데없는 잔소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하지 말라'라는 금기의 숨은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절교육의 시작은 부모로부터

비단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지켜야 할 순서가 존재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버릇이 없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서란 존경 이전의 아주 기본적인 도리다. 밥을 먹을 때는 어른부터 시작한다. 우선 밥상에 사람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어른이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수저를 든 뒤에도 어른이 식사를 먼저 시작해야 아이도 식사를 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만 봤을 때는 누가 먼저 먹든, 어떻게 먹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행위들을 통해 순서를 배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하찮은 음식이라도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뜻인데, 이렇게 순서를 몸으로 익힌 아이들은 다른 모든 일에서도 순서를 지킬 줄 아는 아이가 된다.



반찬을 뒤적거리지 말고 한번 집은 것은 가져와 먹는 것이 옳다고 「동자례」는 가르친다. 자신이 좀 더 먹고 싶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이 또한 모든 것이 풍족한 현대사회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밥상머리 교육의 핵심인 절제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절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예절의 가치로 손꼽히는 것이다. 절제를 배운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와 배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바르게 기르려면 가장 먼저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 대개 사람이 바름을 잃고 성인(聖人)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예절을 배우지 못해서이고, 귀와 눈과 손과 발이 따를 것이 없고, 움직이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함에 기준으로 삼을 것이 없게 된 까닭이다.' 머리로 하는 공부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몸으로 하는 공부, 예절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예절교육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부모로부터 기준을 배우며 바른 습관을 익혀나가는 것이다. 밥을 먹는 바른 방법부터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나가는 것까지 아주 소소한 것들부터 말이다.



부모는 아이를 무조건 예쁘다고만 하면서 감쌀 것이 아니라 그게 비록 아이 입장에서 '잔소리'라고 치부된다 할지라도 원칙과 소신에 따라 아이에게 바른 습관이 잡힐 때까지 계속해서 훈육해야 한다. 「동자례」에도 부모뿐 아니라 스승 또한 아이들로부터 원망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도 피하지 말고 가르치라고 나와 있다. 그렇게 예절로 덕성을 기르면 정신을 기를 수 있다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착하다. 처음부터 무례한 아이는 없다. 그러나 모르는 채로 자라게 되면 아이들은 예절이나 사람다움에 대해 배우지 못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에 어떤 것이 무례한 일인지 모르게 되고 만다. 예절에 대해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내 아이를 바르게 예뻐하는 방법이 예절임을 잊지 말자.



스스로 하면서 저절로 배워요!

시기별로 나눠본 아이들의 '스스로 할 일' 리스트

유아기

1 신발 신고 벗기

물론 이 단계에서는 연령에 맞는 신발 선택을 잘해주어야 한다. 끈을 묶어야 하는 부츠를 사주고 다섯 살 아이에게 혼자 신으라고 한다면 이유식을 먹는 아이에게 단백질을 공급한다고 스테이크를 주는 것과 같다. 유아기에는 벨크로 테이프, 일명 '찍찍이'로 여미는 신발이 스스로 신고 벗기에 좋다.



2 옷 입고 벗기

유아들의 경우 양말 하나 신고 벗는 것도 어려워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답답하다고 부모가 나서서 대신 해주지 말고 스스로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지퍼 사용이나 단추 채우기 등은 평상시 충분히 연습시킨다.



3 장난감 정리하기

어렸을 때부터 정리정돈을 습관화시켜야 한다. 유아기 때는 부모가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어도 좋다. 장난감 정리를 시키면 불필요한 장난감을 지나치게 늘어놓지 않게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참고 서적 /「나를 갈고닦는 예절 동자례」(서신혜 저, 스콜라), 「아이의 사회성 부모의 말이 결정한다」(임영주 저, 노란우산



출처 : 레이디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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