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 계기교육-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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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정희 | 등록일 | 09.06.06 | 조회수 | 263 |
1.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하자, 협정에 의해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해서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쏘련군이 진주하게 되어 남북한으로 갈리게 된 것입니다. 2. 1948년 8월 15일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로 대한민국(한반도의 유일한합법적인 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았습니다.)이 탄생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는 이 승만박사가 선출되었으며(국회에서의 간접 선거), 북한은 그 해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그들만의 정부를 만들고, 김 일성이 주석이 되었습니다. 3. 전세계를 공산화하고자 했던 그 당시 쏘련의 스타린의 사주에 의해서 김 일성이 동족을 향해 일으킨 전쟁입니다. 4.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선전포고도 없이 250여대의 쏘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에서 일제히 남한을 공격했는데, 그날은 마침 주일(일요일)이어서 대부분의 군인들이 외출한 상태였습니다. 3일만인 6월 28일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두달 뒤에는 대구와 부산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이 공산군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사이에 유엔에서는 북한 공산군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군대가 참전하였으며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 국군들의 활약으로 그 나마 영남 일부지역이나마 지킬수 있었고, 1950년 9월 15일에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에 의해서 인천 상륙작전이 감행되어 9월 28일에는 서울이 다시 수복되었고 10월 1일(이 날을 기념해서 지금도 국군의 날로 지키고 있지요.)에는 유엔군과 우리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군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땅을 거의 수복하여 이제 통일이 눈 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중공군(중국군)이 개입하여 다시 밀려 내려와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이 다시 적의 손에 함락되고 천안지역까지 밀렸다가 다시 북상하여 3월 14일에 서울을 되 찾고 지금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우리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성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휴전이란 休(쉴 휴)戰(싸울 전), 즉 전쟁을 쉰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와 북한 사이에는 전쟁 쉬고 있을 뿐이지 두나라 사이에 어떤한 평화조약이나 불가침조약도 맺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쉬는 것을 멈추면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북한은 저희들이 한 짓이 있어서 언제 우리들과 민주 우방국들의 보복이 있을지 몰라 더욱 강한 군사력을 가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래서 그들은 핵무기를 만들어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 가지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할 것은 저들은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을 일으켰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를 적화통일하려는 의도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침략자 미제국주의자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남조선 동포들을 해방시켜야한다." 질문하신 분이나, 위에 좋은 답변을 해주신 분 모두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아 이 나라에 크게 쓰임 받는 귀한 재목들로 자라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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