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촌중학교 로고이미지

8 박성은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0.10.26 조회수 26

 겨울 산을 오르다 갑자기 ㄸ잉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 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 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는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ㅇ르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 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고영민

이전글 어느 날 하나님이
다음글 상한 영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