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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리코더를 배워 볼까요? (중)
작성자 박예슬 등록일 11.08.02 조회수 26

난 악보를 받고 정말 당황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땐 아기처럼 막 계이름을 리코더로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쉬운 것도 아닌 어려운 '아기 공룡 둘리'악보를 주시다니...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는 괜찮았다. 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좀 자만해졌다. 하지만 내 자만함도 잠시!높은 '레,미,파,솔'까지 악보에 있는 것이었다. 자꾸 높은 음을 낼 때마다 뱀이 나올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돌고래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 였다. 나는 순간 상심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연주 했다. 집에서도 리코더를 가져와 시간이 날 때마다 '아기 공룡 둘리'를 연주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높은 음은 거뜬히 연주할 수 있었고, 계이름도 모두 외워 버렸다. 이것이 다 노력을 한 덕분 이었다. 난 항상 그랬다. 어렸을 땐 별것을 다 노력했다. 그 중 하나인 휘파람도 노력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난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아기 공룡 둘리'를 연주 하는데 전 보다 조금 쉬워졌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쉬워졌다. 친구들 모두 전 보다 훨씬 낳아졌다. 선생님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인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였다. 나는 중간에 오른쪽 팔을 다쳐서 깁스를 해야했기 때문에 리코더를 부는 것이 막막했다. 한참 연주가 잘 되던 때 였는데 말이다. 난 어떻게 해서든 리코더를 불려고 했다. 이럴 땐 언제나 승부욕이 대단 했다. 난 움직일 수 있는 손목과 손가락,직각이면서 안쪽으로 구부려 놓은 팔을 이용했다. 잘 이용하니 리코더 부는 자세와 거의 일치했다. 다행히 리코더는 오른쪽 팔이 밑으로 가게 만들어 연주해야하는 것이었으므로 난 연주하기가 편했다. 소리도 정확하게 잘 나왔고 계이름도 정확하게 잘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도대체 무슨 의지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부상 투혼 이었다. 그렇게 '아기 공룡 둘리'를 계속 연주 하다보니 어느 새 한 학기가 다 지나갔다. 즐겁게 방학을 보내고 2학기가 찾아왔다. 그때 학교에서는 2학기 때는 4학년 교실에서 하는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리코더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서로 바꿔야 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다. 우리는 그 정보를 듣고 서로 자리를 바꿨다. 우리는 왠지 무언가에 해방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곧 있으니 다시 3학년 교실로 간 친구들이 우리가 있는 4학년 교실로 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네들 왜 여기와?"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이러는 것이었다. "1학기 때 원래 하던대로 하는 거래."라고 말이다. 이럴수가!갑갑한 새장에서 벗어난 새가 도망치다 주인에게 잡혀서 다시 새장에 갇힌 그런 기분이었다.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리코더 선생님이 우리에게 "네들 왜 거기 갔었어?"라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역시 원래 하던 것을 하는게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 시무룩 했냐는 듯 다시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2학기 때는 좀 더 발전해서 캐스터 네츠,트라이 앵글 등을 연주 속에 넣어서 합주를 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어느 새 마지막 수업을 받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역시 그때는 섭섭한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과연 마지막 수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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