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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평화공원
작성자 남정미 등록일 12.06.22 조회수 19

저번주 목요일날 전교생이 자율학습 시간으로 노근리 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안내 선생이 점점 6.25전쟁이 잊혀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6.25전쟁에 대해 잘 아는건 많지 않다. 그져 일제 강점기시대가 끝나고 소련과 미국이 들어와 6.25전쟁이 시작됬었다는 큰 줄거리만 알뿐 더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안내 선생님은 따라 다니면서 자세히 알아야 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번에 가면 터널에 있던 동그라미 세모 네모에 대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안내 선생님이 6.25전쟁에 대해 10분정도 설명을 해 주셨다. 6.25전쟁의 시작은 이러했다. 소련이 어느날 쳐들어 왔다. 그때 미국은 소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당당하게 시작은 했지만 북한은 탱크를 몰고오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미국이 질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였다. 대전까지 밀리면서 노근리가 시작된다. 1950년 7월 25일 6.25전쟁이 시작되고 한달이 되는 날 노근리 사건이 일어났다. 대전에서 밀린 미국인은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려고 임계리마을 주민을 대피 시켰다. 결국 임계리 마을 사람들은 노근리까지 왔다. 그때 미국인들은 갑자기 기차길로 사람들을 올려보냈다. 짐을 검사하고 있던 순간 폭격이 시자되었다. 하늘에서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기차길 바로 밑에 있던 쌍굴로 대피를 했다. 미국인들은 주민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총격을 3박4일동안 했다. 이것이 6.25전쟁안에 있던 노근리 사건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게 이야기 처럼 들렸다. 그래서 10분이 되게 짧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소극장으로 갔다. 물론 영상도 노근리에 대한 사건이였다. 소극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건 아버지가 아이의 울음소리때문에 아이를 물에 넣어서 어쩔수 없이 자식을 버려야만 했던 한 아버지의 만화 동영상이 가장 인상깊게 남는다. 아이의 목숨까지 없에가면서 얼마나 6.25전쟁이 비참했는지 알수 있었다. 소극장에서 나와 우리는 전시관으로 갔다. 전시관에는 그 당신 사용되었던 총들 그리고 피난가는 모습 그리고 한곳에는 6.25전쟁을 겪으신 분의 영상을 모아둔 곳이 있었다. 선생님이 총을 설명해 주시면서 한 커플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노근리 전쟁때 피난을 가게되 여선생님과 남선생이 있었는데 남자선생님은 충분히 몰래 탈출할수 있었지만 여선생 때문에 끝까지 남아 죽었다고 한다. 그때 시신은 둘이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정말 감동적이였다. 다음 통로로 이동하는데 쌍굴을 재연해 놓은 터널이 있었다. 반대펴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정말 특이한 이름도 있었지만 이상한건 중간중간 "김 씨" "박 씨" 등 성이 적혀져 있었다  가 적혀져 있었다. 이분들은 돌아가셨지만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신 성만 올렸다고 한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근리 평화공원을 만들게 된 동기!!!! 바로 회장님 덕분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자 회장님이 직접 책을 만들어서 미국에 항의 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 미국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미국이 노근리 평화공원까지 왔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지만 그때 노근리에 계셨던 군인들이 사령의 명령을 받아서 쌍굴안에 있던 사람들을 쏘았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증거가 있는데 미국은 그져 우리에게 유감표명만 했을뿐 사과는 하지 안았다. 그럼 사과표명이 아닌 유감표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보상도 아무것도 받을수 없었다. 다음은 직접 쌍굴로 나갔다. 쌍굴은 아직도 차가 지나다니기 대문에 차가오면 비켜줘야 했었다. 드디어 그 네모 세모 동그라미에 대해 알수 있었다. 내모는 물이 나오던 구멍이였고 동그라미는 탄두가 찍힌 자국 세모는 아직 탄두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 신기한건 밖에는 맨들맨들 하지만 밖에돠 달리 안에는 거칠거칠했다. 이 노근리 사건을 없에려고 누가와서 이런일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쌍굴 안에 모두 시멘트로 발라 탄두 자국을 없엤다고 한다. 밖에는 이끼가 껴서 미쳐 밖에는 바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나가라 시멘트를 발랐다고 그냥 덮어두지는 않았다. 시멘트를 다 갉아내고 밖에 있던 이끼들도 물로 다 씼어 냈다. 그제서야 탄두자국과 탄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모 주위에는 유달리 동그라미들이 많았다. 몇칠동안 물도 마시지 못한 사람들이 당연히 물을 찾으러 나오게 되면서 네모 주위에 많은 동그라미 들이 있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이 죽음을 당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세모에도 탄투가 박혀 직접 그 탄두를 보았다. 탄두는 못같이 생겨있었다. 이 쌍굴은 들어와서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쟁은 다시 일어나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휴전상태에 있고 하루빨리 통일 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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