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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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효정 | 등록일 | 13.06.30 | 조회수 | 44 |
학교/학년/반/번호/이름: 상촌중학교 1학녅 1반 7번 이효정 장소: 전쟁 기념관(서울),현충원(서울) 날짜:2013년 6월27일 목요일
나는 이번 주 목요일에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과 현충원에 갔다 왔다. 먼저 전쟁기념관에 갔다. 처음 딱 들어갔을 때 많은 20대 남자들이 총을 들고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총을 위로 던져다가 다시 잡는 장면이다. 정말 멋졌다. 그 퍼포먼스가 끝난 후 퍼포먼스를 보여준 분들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사진은 같이 찍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여자 우리 반 여자애들과 함께 다녔다. 두 명은 앞에 가고, 다른 두 명은 사진을 찍느라 천천히 갔다. 나는 사진을 찍어서 천천히 가는 쪽에 해당이 되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는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찍을만한 것들이 참 많았다. 나는 전시관을 돌아다니면서 전쟁 때 타고 다녔던 차들을 보았다. 내가 본 것 들은 5톤 구난차, 21/2톤 카고 트럭, 11/4톤 구급차, 1/4톤 표준차량 등 이렇게 4가지를 보았다. 나는 이것들을 보면서 '한번이라도 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진고' 라는 악기를 보았다. 이것은 현재로 치면 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진고는 음악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그 다음에는 전 쟁 때 돌아가신 몇몇의 분들을 좀 보았다. 먼저 육군의 대장이었던 김종오 대장, 베트남전의 이인호, 이학현, 전창우, 조경식 해병대, 베트남 전쟁의 김무석, 이상덕, 임동천 육군, 6.25 전쟁의 김재호, 김종묵, 김종오, 김풍익, 김홍일, 도대철, 민혜동, 백마 3용사, 백제덕, 변구영, 송요찬, 송태호 육군들의 사진이 걸려져 있었다. 사진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거나 그림으로 그려져 있거나 동상으로 있었다. 이걸 보는데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좀 찡~했다. 이렇게 나는 기념관의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외부로 나갔다. 계속 가다보니 길 벽에 큰 돌이 많이 있었다. 그곳에는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많이 적혀져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가다보니 움직이지는 않지만 올라 타볼 수 있는 모형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한번 올라 타보았다. 정말 좋았다. 아까 말했듯이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전쟁 기념관을 다 둘러본 후 점심을 먹고 현충원으로 갔다. 우리가 현충원으로 갔을 때 군인들이 묵념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묵념을 맞히고 우리가 가서 묵념을 했다. 우리는 묵념을 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정말 놀랍도록 많았다. 또 그 지하실에는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곳을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고 묘가 있는 곳을 한바퀴 돌았다. 현충원에는 이승만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이렇게 3명의 대통령이 잠들어 있다. 아분들의 아내르 설명하겠다. 먼저 이승만 대통령은 오스트리아의 프란체스카와 국제 결혼을 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를 영부인으로 맞이하였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를 영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에 있었던 광복절 기념 행사장에서 문세광이라는 사람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 이일 때문에 행사장에서는 아주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이 모두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호국의 형제, 호국의 부자 이렇게도 구분하고 있다. 먼저 호국의 형제는 두 형제가 모두 전쟁에 참여했는데 둘 다 죽은 상태를 말한다. 그 상태에서 한명이 먼저 와있고 다른 한명은 뒤늦게 와서 먼저 와있던 사람을 빼어내서 호국의 형제 자리에 함께 묻어주는 것이다. 이것의 가징 큰 예로 이만우와 이천우라는 두 형제가 있다. 이 둘 중에서 누가 먼저 왔는지는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호국의 부자는 말 그대로 아버지와 아들을 뜻한다. 그런데 좀 놀란 것은 해설을 들으면서 현재 현충원에 잠들고 계신 분들은 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의 반도 안된다는 점이다. 나는 정말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데 반도 발견이 되지 않았다니 말이다. 이렇게 차에서 설명을 듣고 내려서 어떤 곳으로 들어가서 유품들을 직접 보았다. 그중에서 유언으로 남긴 편지를 보았다. 내가 메모 해둔 것을 따르면 정찬오, 이안호, 이흥섭, 류재문 이렇게 메모를 해두었다. 이 분들이 쓴 편지를 읽으면 정말 마음이 뭉클한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알고 깨달고 간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쟁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며칠 전에 6.25참전비로 가서 희생하신 분들께 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연설을 했는데 갑자기 우리보고 6.25가 뭔지 아냐고 쿤 소리로 물었다. 나는 왜 그것을 물었는지 알 수 없었고 굉장히 당황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풍으로 인해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마지막에 아쉬웠던 점은 옥천에 들러서 육영수 영부인의 생가를 들을 수 있었는데 시간이 안되서 못보고 왔다는 점이다. 다음에 꼭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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