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집착증이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지난 10일 윤리학자 더크 필립슨의 최근간 '작지만 큰 숫자: GDP가 세상을 지배하는 법, 그리고 GDP에 맞서기'(프린스턴대학출판부) 서평을 통해 "대공황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퍼진 GDP집착증이 현재의 난국을 만들었다"며 "GDP를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뉴요커에 따르면 저자는 GDP의 역사와 사용법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데, 특히 GDP의 허점에 주목한다. 성장중심의 이데올로기로서 양적 지표인 GDP가 지구와 인간의 행복에 존재론적 위협을 가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GDP라는 용어는 보편적으로 쓰인다. 영국 일간 타임스의 기사를 검색하면 올해만도 197번이나 GDP를 언급하고 있다. GDP는 또 임의적 성격을 띤다. 1만개 이상의 복잡 다기한 경제적 흐름이 모두 GDP로 수렴된다.
또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다. 1년에 2%씩 완만하게 성장한다고 할 경우 다음 새 천년이 도래할 때까지 세계경제는 지금보다 10억배 이상 생산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GDP에 집착하는가. 1929년 대공황 발발 후 1932년까지 미국에 있던 2만6000개의 은행 가운데 1만개가 파산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는 제로에 가깝게 급감했다. 실업률은 25%에 이르렀다. 경제시스템은 끝을 모르게 추락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측정할 수 없었다. 미국 연방정부가 그같은 통계수치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업률과 소득, 생산성 등 수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득세했던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침체란 자연적 순환 과정"이라며 "자유시장은 필연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원상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앤드루 멜론은 "노동력, 농부를 유연화하고 주식과 부동산을 유동화해야 한다"며 "유연화와 유동화가 경제시스템상 부패를 몰아낸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반론이 거셌다. 공화당의 진보적 상원의원이었던 로버트 라 폴레트는 수년간 로비를 벌여 경제통계를 작성해 관리하자고 주장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통계를 작성, 관리하지 않았던 당시 환경을 '야만적 암흑기'라고 비난했다.
결국 1932년 '결의안 220'이라는 이름의 법률이 입안됐다. 이 법은 미 상무부가 국가소득과 관련한 보고서를 생산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1934년 겨울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1929~1932년 국가소득'이라는 이름의 126쪽짜리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그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엄정한 조건 하에서 관리되지 않는다면,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려는 인간본성상의 약점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경고를 보탰다.
쿠즈네츠가 보고서에 담은 공식은 현재의 우리가 GDP라고 부르는 것으로, 단순한 내용이었다. 민간소비에 총투자액과 정부지출, 수출을 더한 뒤 수입을 빼면 나오는 수치가 GDP였다. 달리 말하면 특정 연도에 한 나라 경제시스템 내에서 소비되는 모든 돈의 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필립슨은 "GDP는 맹점을 가진 잣대"라며 "비용과 손실을 무시하고 단지 산출량만을 따진다"고 비판한다.
국가소득이라는 개념은 결함이 있었지만 경제지표로서 언론의 주목을 끌 만한 것이었다. 정부의 경제수치가 발표되면 언론들은 "우리나라 소득이 4년 만에 40% 급감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GDP를 내세워 뉴딜정책을 밀어붙였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산복합체'를 만들어 전례없는 전쟁물자를 양산했다. 대공황 이전 미국 정부지출이 GDP에 보태는 비율은 2%가 채 안됐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직후 정부지출은 GDP의 50%에 육박했다. 그후 '큰정부'를 따질 때 GDP를 비교하는 추세가 굳어졌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유엔이 창설된 뒤 GDP는 회원자격을 논하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국가 간 비교지표가 됐다.
필립슨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모든 주요국들은 GDP 체제 내로 편입했다"며 "이때부터 세계경제가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GDP에 대한 필립슨의 비판 요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 비판은 자연적 자본(natural capital)과 관련 있다.
자연 그 자체로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인간이 가격을 가진 재화로 만들면서 가치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에너지소비를 부추기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상 석탄은 GDP에 불균등하게 기여한다.
석탄이 땅속에 묻혀 있을 때 그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일단 채굴한 뒤에는 가치가 영원히 사라진다. 반면 석탄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 예를 들어 숯검댕을 지우는 비용이나 천식을 치료하는 비용 등은 GDP 기반 경제를 살찌운다.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따라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 이는 효율과 속도를 명분으로 자연을 고갈시키는 행위다. 필립슨은 "대공황 이후 인간은 유사 이래 전 기간을 포함한 것보다 더 많이 자연을 소비했다"고 말한다.
GDP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측면이다. GDP기반 경제에서 사회적 자본의 가치는 화폐로 표시되지 않는다면 단호히 평가절하된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불필요한 그 어떤 것이 된다. 자유시간은 페이스북을 하며 뒹구는 게으름과 같은 말이다.
신제품 출시를 위한 '계획적 구식화'는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결혼까지 구식화 대상에 오를 정도다. 필립슨은 "현대 소비문화는 기혼부부들에게까지 외도를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2200만명의 회원을 가진 온라인 외도사이트 애쉴리 매디슨은 광고로만 수백만달러를 긁어모은다.
필립슨은 "매디슨은 외로움과 절망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며 "하지만 이 또한 GDP를 높이는 경제활동"이라고 말했다. 매디슨은 최근 해킹을 당해 회원정보가 공개되는 사태를 만들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매디슨은 기존 회원 정보를 폐기했다고 발표했지만, 신원 공개로 이혼하는 회원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매디슨의 자료폐기와 회원들의 이혼 역시 GDP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제활동이다.
대안은 있는가. 필립슨은 GDP를 대체할 대안이 이미 100개 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신경제재단에서 발표한 지구행복지수HPI(Happy Planet Index)는 기대수명 중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시민들이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통계다.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는 미국 소장 경제학자들이 주창한 경제지표로, 시장가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경제적 활동 외에 가사노동·육아 등에서 유발되는 긍정적 가치와 범죄·환경오염·자원고갈의 부정적 비용 등 총 26가지의 비용과 편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GPI는 미국 메릴랜드·버몬트주, 캐나다 앨버타주, 핀란드에서 실제 활용하는 지표다.
하지만 GDP를 숭배하는 기존관념과 GDP를 통해 힘을 과시하려는 관료제가 있기에 대안이 채택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다.
저자는 "지구촌 증시가 동시 폭락해 수조달러대의 가치가 단 하루 만에 증발했다가 며칠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시대"라며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증표이자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강력한 예언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