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
|||||
---|---|---|---|---|---|
작성자 | 산척초 | 등록일 | 13.06.25 | 조회수 | 282 |
첨부파일 | |||||
6 ․ 25 사변
민족의 비극 6ㆍ25… 지금부터 63년전 우리나라 역사 이래 가장 비참했던 동족간의 전쟁이 발발했던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4시, 우리 국민 모두가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북한군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갑자기 우리 자유대한을 짓밟고야 말았습니다. 갑자기 당한 우리 국군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 공산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그저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우세한 군사력을 갖추고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20일 대전을 거쳐 7일 만에 낙동강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3년간 계속되어 남북한 및 유엔군과 중공군 등 인명 피해만도 400만 명 이상이었으며, 많은 재산의 피해를 입고 불타버린 폐허와 가난과 피난민들이 들끓었습니다. 다행히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신속한 상황 판단과 우방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침략 3개월만인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그 유명한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켜 북한의 보급로를 중간에서 차단하고 적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든 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게 됩니다. 드디어 9월 29일 부산에 있던 임시정부를 서울로 옮기고 9월 30일 워커 중장은 38선 돌파 명령을 내렸고, 맥아더 장군은 도망치는 북한군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고 20일 맥아더 장군은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에게 한국 만주 국경선까지 조속히 진격할 것을 명령하여 우리는 남북한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월 25일 생각지도 않았던 100 만 명의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여 전세는 우리에게 불리하여, 크리스마스를 미국에서 보낸다던 맥아더 장군의 공약은 무너지고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며 인해전술로 내려오는 중공군 앞에서 11월 26일 유엔군은 후퇴를 시작, 51년 1월 4일 우리는 다시 서울을 북괴에게 빼앗기고 정부는 또 부산으로 임시 수도를 옮겼습니다. 어려움 끝에 유엔군의 북진으로 서울을 재탈환한 우리는 북한과 공방전을 거듭하다 북한의 휴전 제의를 유엔이 받아들여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어 휴전선을 경계로 전쟁은 중단되었으나 통일의 꿈은 무너져 오늘까지도 남북이 대치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과제는 6ㆍ25전쟁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 땅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도록 함께 노력하면서 통일을 위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들이 건강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서 우리나라의 국력을 튼튼히 하고 선진국으로 발전시켜 평화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이전글 | 2013. 연말정산 자료 |
---|---|
다음글 | 방과후학교 학습지도안 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