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의 유래는 충주의 옛 지명이 중원, 대원, 국원으로 불리워진 역사를 바탕으로 삼원이라고 명명되었으며, 고려사에 따르면 충주는 신라시대 중원경으로 불렸으나 고려 태조 23년(940년) 4월23일 충주로 변경됐다. 충주라는 이름은 이 시기부터 사용됐는데, 성종2년(983년) 군과 현보다 우위인 행정구역 12목(牧)을 설치하면서 충주목이 됐다.
별호(別號)는 대원(大原),[순화(淳化) 때에 정한 것이다. 】 또는 예성(蘂城)이다.
국원성(國原城)은 475년(장수왕 63년)부터 551년(양원왕 6년) 백제가 이곳을 점령하기 전까지 76년 동안 고구려의 남부 중심지이자 부도로 추정된다.[1] 위치는 사적 제 400호 충주 장미산성, 충주 대림산성 등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상징하는 국보 205호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14권 충주목편-조선전기 문신 이행·윤은보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1530년에 편찬한 지리서. 관찬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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