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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에 요절한 음악의 천재 슈베르트를 공부 하자?
작성자 괴산삼보초등학교 등록일 10.08.09 조회수 158
31살에 요절한 음악의 천재 슈베르트를 공부 하자?
 
 짧고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에 꿈꾸는 듯한 눈, 그의
 음악에는 순진무구함과 따뜻한 사랑이 스며있으며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동경이 숨어있습니다.
 
 그의 <즉흥곡>들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유려한 매력으로
 우리를 붙잡아 둡니다. 슈베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낭만파 음악을 잠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18세기말의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일어난 자유주의 사상은
 음악에 영향을 주어 자유로운 사상과 섬세한 시적 감정을
 강조하는 낭만파의 음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음악은 곡의 형식이 자유롭고 시적 상념을
 노래한 기악곡과 성악곡이 성행하게 되는데 슈베르트에
 의해 예술 가곡이, 리스트에 의해 교향詩가, 바그너에
 의해 악극이 창시되었고,
 
 또 표제음악, 즉흥곡 등 새로운 형태의 곡이 탄생된 시
 기였습니다. 슈베르트는 31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1천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미사곡이나 오페라, 심포니, 연가곡 등 수많은 작품들뿐
 아니라, 6백 곡을 헤아리는 그의 가곡 중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 되어온 것만도 수백 곡에 이르니,
 
 슈베르트를 가리켜 "가곡의 왕"이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일생 동안 그만큼 많은 수의
 가곡을 쓴 사람은 전무 후무하다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 가곡의 대가가 되려고 결심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작곡가로서 돈벌이가 잘 되는
 장르는 오페라였는데, 히트만 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지요.
 
 사실 슈베르트도 그런 꿈을 꾸고 썼을 오페라가 19곡
 이나 됩니다만, 그러나 그의 오페라는 당시에는 한 번도
 상영되지 않았고 지금도 무시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돈 생각은 염두에도 없이 친구들이 모이는 써클에서
 노래할 목적으로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아무데나 써갈긴,
 
 그야말로 하찮은 가곡들이 오늘날에는 "주옥"이니 "보배"니
 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초등학교 교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늘 궁핍하였지만, 맏형이 피아노를 치고
 아버지와 둘째 형이 바이올린을 했으므로 가족이 어울려
 실내악을 연주하는 등 음악적 환경은 괜찮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또, 11세 슈베르트는 빈 궁정 소년합창단에 들어가 보이
 소프라노를 담당하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이후 정처 없는
 생활로 음악에 몰두 합니다.
 
 기숙사 시절의 절친한 친구 요제프 폰 슈파운과 화가인
 슈빈트, 퇴직한 궁정 바리톤 가수 포글 등과 어울려 그의
 이름을 딴 "슈베르티아데"라는 음악 써클을 만들었는데,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한 그 모임에서 친구 포글이 처음으로
 불러 발표한 가곡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명가곡으로 남은 연가곡 《겨울 나그네》도 바로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슈베르트는 빈(vien)에서 태어나 빈(vien)에서 죽은 순수한
 빈(vien) 사람이었답니다. 그의 작품은 이른바 "비더마이어"
 라고 불리던 중산층 세력의 대두에 힘입어 서민적 내지는
 시민적인 정서로 우리의 가슴에 친근하게 와닿습니다.
 
 성격이 워낙 소심했던 슈베르트는 동시대의 삶을 살았던
 거장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기도 없어 그와는 일생에 꼭 한 번 대면했을 뿐이었
 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의 장례식 때는 횃불을 들고 장의마차를 선도
 하는 36명의 대열 속에는 그도 끼어 있었다지요.
 
 장례식이 끝난 후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다음에 죽을
 사람을 위해 술잔을 들자고 제창하였는데 결국 그 자신
 이 베토벤이 죽은 지 불과 1년 후인 1828년 11월 19일,
 
 31살의 젊디 젊은 꽃같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유해는 그의 소원에 따라 빈(vien)의
 베토벤 묘 곁에 묻혀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샘솟듯 끊임없이 넘쳐 흐르는 악상과 이것을
 작품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직감력을 가지고 자신의 영감
 을 따라 애환과 감정을 음악에 도입시켜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서정적 음율을 노래합니다.
 
 낭만적인 가곡에 있어서는 선배인 베토벤이나 베버도 아직
 눈 뜨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예리한 감성과 풍부한 정감으로 작품을 썼고,
 
 필요한 가곡 기교도 스스로 습득하였으며, 또한 모차르트
 와 베토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샘물처럼
 흐르는 그의 선율은 서정이 젖어 있고,
 
 그의 화성은 언제나 섬세하고 뭉클한 정감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연가곡이니만큼, 아주 몽환적일 정도로
 느리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서로 다른 형식의 특징을 느끼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빠르기에서부터 크게 차이가 나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고 둘 다 아름답고 풍부한 슈베르트의 감성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가난하게 생을 시작한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피아노를 장만할 여유가 없던 그는
 다른 작곡가와는 달리 기타를 많이 애용하였으며
 
 기타에 유달리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대의 기타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클래식
 기타 연주곡은 듀엣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밤과 꿈(Nacht und Traume) D827"은 오늘날의
 기성세대들의 경우, 오래 전 심야 라디오에서 "로망스"와
 함께 "밤과 꿈" 연주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기타리스트인 폼포니오와 자라테 듀오의 이중주 연주로
 유명해진 이 곡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설레일만큼 훌륭
 한 연주곡입니다. 슈베르트와 클래식 기타의 매력이 함
 께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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