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아바쿠스는 "평판"이라고 하는 의미로 평평한 판(돌이라든지 나무로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 위에 돌을 늘어놓아 계산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 수를 나타내거나 계산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온 세상에서 누구나가 알기 쉬운 구체적인 돌이나 코인 그리고 구슬을 사용해 계산하는 「주판」이 탄생했습니다. | | | | | | | 구술 사용 주판 모습 | | 약 2,500년전 아바쿠스 모습 |
| | 중국의 주판에 관한 오래된 문헌에는 | | | | | 나시 아마네 궁실 유적 출토의 도환(기원전 1000년경) | | | | 청색20알갱이, 황색70알갱이의 진환형의 도환을 중국에서 가장 낡은 주산 공구(산주)라고하는 설이 있습니다. | | | | 수술기유(2세기의 어악의 문장에 6세기의 것이 주를 더한 책) | | | | 이 책에는, "주산"이라고 하는 계산법이 있는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주판에 대해서는 판을 상·중·하로 나누어 상·하에 주를 준비해, 중간 부분에서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자리와 1자리가 분류되어 있는 일도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슬이 마주 보고 있었는가는 모릅니다. | | | | | | 철경록(1366해,도중의) | | | | 이 책에는, "하인을 고용해 보면, 처음은 잘 일한다(뇌반주). 당분간 경과하면, 명령한 일밖에 하지 않는(주판주), 그 중에서 말해도 움직이지 않는다(줄정주)" 라고 있어, 주판이라고 하는 문자가 나옵니다. | | | | 괴본대 상4말 잡무(1371해) | | | | 이 책은 일종의 그림책으로 그림의 옆에 거기에 상당하는 한자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알수있듯이 5자리 2개 1자리 5개로 된 주판이 근래에도 유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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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주판 | | | | 계산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5천년 전이었다. 기원전 3천년께 바빌로니아인들이 널빤지에 모래나 분말을 놓아 셈하는 주판을 사용한 것이 그 효시였다. | | 그 뒤 중국에서는 기원전 6백년때 들어 구슬을 끼운 주판을 개발했는가 하면 고대 로마에서는 기원전 3∼4 세기에 홈을 판 널빤지 위에 여러 개의 줄을 긋고 조야골을 놓아 셈하는 홈주판을 이용했다. | | 그러나 서양의 주판은 아라비아숫자의 보급에 따라 점차 쇠퇴하여 17세기에는 그 모습이 사라지고 전산위주의 계산법이 정착했다. 그에 따라 한때 주판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래했다는 설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각기 독자적으로 발명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고 한다. | | 중국에서는 후한말의 서악이 쓴 수술기유란 책에 주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주판을 썼음을 알 수 있고 그 뒤 15세기중반에 와서야 널리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중국의 주판이 한국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 | 다만 1593년(선조 26) 정대저의 "산법통종" 출간이 그 전래를 확인시켜 주는 첫기록이다. 당시에는 일부 식자층에서만 관심을 기울였을뿐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한다. 그와 같은 사정은 조선말까지도 마찬가지였다. | | 한국에서 주산 보급이본격화된 것은, 1920년 조선주산보급회가 생기면서부터다. 그 뒤 36년 보성전문학교가 첫 주산경기대회를 개최한 이후 잇따라 대회들이 열림으로써 그 보급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 | 광복 이후에는 1950년대에 상업학교의 교육과정에 주산과목이 채택 된데 이어 60년대부터는 정부에서 검정을 실시했고 일반 학교에서도 주산을 특기교육의 하나로 장려했다. | | 한 때는 주산에도 급수가 있어 승급과 승단을 위한 시험을 보곤 했던 주산, 주판이 이제 어린이들의 두뇌개발을 위해 다시 부활하고 있는것이다. | | 실용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인식속에서 사라져 갔던것이 주판만은 아니지만 사람의 머리를 사용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진보는 결국 인간을 위한 발전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시대가 곧 올 것 같다는 것은 단순한 나만의 기우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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