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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4-4 이효리)
작성자 이효리 등록일 09.08.26 조회수 122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어렸을때 단시를 잘 지었고 관찰력이 정확했으며 시를 짓는 개구쟁이라고도 불렀다. 아버지는 정약용이 4살 되던 해 부터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정약용은 글자의 듯을 새겨 가며 익혔다. 놀랍게도 정약용의 판단력은 글자 하나하나에까지 미쳤다. 하지만,정약용은 얌전히 글공부만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장난이 심했다. 하루는 냇물에도 빠졌다. 젓은 옷을 입고 사랑방으로 들어가 시를 썼다. 정약용은 이렇게 쓴 시들을 모아서 9살때 <삼미집>이라는 시집을 엮었다. 정약용은 이렇듯 글재주와 관찰력이 뛰어나, 뒷날 대실학자가 되었다. <규장 전문>  <옥편> 등의 많은 책을 펴냈다. 천주교를 믿던 정약욧도 경상도로 귀양을 갔다가, 귀양지가 바뀌어 전라도 강진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 많은 책을 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다산 정약용은 조선 최대의 실학자로 손꼽힌다. 나도 나만의 어려움이 있을때 슬기롭게 해결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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