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4-2 어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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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어경환 | 등록일 | 09.08.24 | 조회수 | 79 |
안익태를 읽고...... 1960년 일본의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다. 한때 일본은 힘으로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했으나 안익태는 지위봉 하나로 일본의 음악 계를 정복하였다.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가 만든 ‘한국 환상곡’이 일본 도쿄에서 울려 퍼졌다. 30년이 넘게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땅에서 듣는 애국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안익태는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8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안익태는 반년쯤 배우자 교회에서 듣던 찬송가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3살이된 안익태는 평양 숭실중학교에 들어갔다. 교장선생님이 미국사람이라 그런지 그학교에는 관현악단이 있었다. 안익태를 본 교장선생님께서는 안익태르 관현악단에 들어가게 해주었다. 그때 안익태는 첼로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양에서는 첼로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은 서울에 있는 선교사에게 부탁해 방학마다 안익태가 첼로를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안익태는 날마다 첼로연습을 했다. 하지만하숙방에서 쫒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을 위한 안익태의 노력은 막을 수 없었다. 1919년 중학교2학년이 된 안익태는 음악부를 이끄는 부장이 되었다. 어느날 어떤 선생님이 일본의 뜻대로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학생들에게 친일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다. 안익태는 화가나서 친구들과 동맹휴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일로 안익태는 무기정학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1921년 일본 도쿄로 떠났던 안익태는 세이소쿠중학교에 들어갔고 음악에만 온힘을 쏟아 부었다. 1926년 여름방학동안 고국을 찾은 안익태는 여러 연주회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 도쿄로 돌아온 안익태는 첼로강사를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졸업을 하자마자 독주회를 열었다. 나는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알았다. 난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데...... 난 지금 이순간 내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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