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세 개인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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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석초 | 등록일 | 09.04.28 | 조회수 | 211 |
1944년 겨울, 일본의 히로시마. 네 명의 남자아이들이 고구마를 구워 먹기 위해서 군불 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아이들의 등 뒤에 트럭 한 대가 후진을 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운전사의 눈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트럭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다른 아이들은 깜짝 놀라 모두 다른 곳으로 피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한 아이는 고구마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재빠르게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결국 트럭은 아이를 치었고, 아이는 차에 밀려 넘어지며 오른손을 불 속에 넣고 말았습니다. 운전사는 깜짝 놀라 차를 세우고 밖으로 뛰어나와 아이를 안아 올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이의 부모가 달려와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병원에서도 좀처럼 아이의 차례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뒤늦게 치료를 받은 아이의 손은 엄지와 검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이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들러붙은 세 손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근육이 모두 상했기 때문에 수술은 실패했고, 결국 아이의 오른 손은 엄지와 검지, 그리고 뭉쳐있는 나머지 손가락, 이렇게 세 개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야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손가락이 세 개뿐인 오른손을 보다가 결국 왼손잡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른손이 안되면 왼손으로라도'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왼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힘이 떨어지는 기형의 오른 손에도 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오른 손으로만 야구방망이를 잡고 스윙 연습을 해댔습니다. 피부 이식 수술을 한 오른손의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흘러내리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1년, 은퇴를 선언한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강타자 장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통산 3천83개의 안타를 기록했고, 타율은 무려 3할 1푼 9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야구 천재라고 불렀지만, 그의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 그리고 서로 달라붙은 뭉치손을 지닌 장애인이었습니다. 출처: 낮은울타리 2002년 3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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