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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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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길을 걷는 아이로 기르기
작성자 오석초 등록일 09.04.28 조회수 227
예절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한 방법: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지혜
야단치면 우리아이 기죽지 않을까" 과잉충성하는 부모가 '버릇없음' 키워
"문제아는 없다, 그 뒤에 문제부모가 있을 뿐"
"선생님, 얘가 글쎄 도무지 학교를 안가려고 해요", "선생님,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대입을 안보고 백댄서가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만 두게 하지요?" 등등 상담을 요청하는 자녀문제는 대략 아이의 학습이나 진로 문제 또는 그것을 잘하기 위한 방법 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이에 반하여 "선생님, 우리 아이가 남을 배려할 줄 몰라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요?"하는 식의 상담 문의는 지금까지 필자는 받아본 적이 없다(그다지 길지 않은 상담경력의 탓도 있겠지만).
물론 상담소라는 곳이 뭔가 문제거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의논해서 해결하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러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사회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예의 없음을 그리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간에 심심지 않게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크게는 아이의 행동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는 사건들을 보면 나만 아는 개인 중심적인 행동은 분초를 요하는 시급한 문제는 아니지만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문제이다.
게다가 아동학자들이 내세운 21세기에 성취되어야 할 아동교육의 과제들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창의적이고 민주시민의식을 구비한 인간교육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자녀들의 예절교육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공중예절 무시' 조장하는 부모도
우리는 아주 쉽게 지하철에서 창문을 보려고 신발을 신은 채 의자에 올라가는 아이와 그 바람에 옆에 앉은 사람의 옷이 더럽혀짐으로써 그것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거나, 간혹 무서운(?) 어른은 야단을 치기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개중에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고 제재를 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대략은 마음에도 없는 아주 의례적인 말만 내뱉어 버린다.
또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상대방이 화가나 이미 아이를 나무란 뒤라면 그까짓것 가지고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는 식으로 급기야는 어른의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줄이 길게 늘어선 곳에서 차례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아이들을 시켜서 일명 새치기를 조장하는 간 큰 부모들도 있다.
사태가 이 정도 되면 아이들의 예절 없음은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문제아는 없다. 단지 그 뒤에는 문제 부모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 Neil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버릇없음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된 가정교육 때문인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애롭기만 한 부모를 둔 아이는 버릇없고 의존성 강해
예로부터 우리 가정교육의 원리는 엄부자모(嚴父慈母)를 따랐다. 이러한 원리는 현대의 부모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즉 부모의 유형은 4가지(자애롭기만 한 부모, 엄격하기만 한 부모,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모, 엄격하지도 자애롭지도 못한 부모)로 분류되는데 물론 가장 바람직한 부모상은 엄격함과 자애로움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특성은 자신감 있고 사리 분별력이 있다. 반면에 그지없이 자애롭기만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미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며, 버릇없고 의존적인 특성을 갖게된다.
핵가족화 따른 아이중심 문화가 '왕자·공주' 양산
요즘 대부분의 가정이 아이들 중심으로 되고 있다. 소비나 여가생활 하다못해 그날 무엇을 먹을까하는 결정권까지도 아이들 입맛에 우선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자녀가 모두 '왕자와 공주'로 군림한 까닭은 자꾸 적어져만 가는 자녀수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아이들은 적게는 셋, 넷 혹은 많게는 그 이상의 형제들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의 서열이 있고 질서를 만든다. 또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부모의 애정이나 관심도 누구 하나에게 집중되거나 과잉으로 쏟아 부을 수 없다.
많은 동생들을 둔 아버지 같은 어머니 같은 형님 누나들은 없는 가운데서도 나누어 갖으려고 하거나 동생부터 챙기는 책임감과 배려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경제개발과 함께 추진된 가족계획 사업으로, 두 자녀나 한 자녀 갖기의 확산은 모든 부모로 하여금 자녀에게 과잉 충성(?)하게 하는 병폐를 가져왔다.
또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렀던 집안의 가풍이나, 사람됨의 도리 등의 인성교육보다는 1등을 향한 학습교육이 무엇보다도 우선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아이들에게 공부만 잘하면 능사라는 생각을 갖게 해 아이들을 더욱 자기만 생각하는 개인주의로 만들었다.
첨단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새시대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key는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이 살아 있는 인간 중심의 회복이다. 즉 남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의식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나만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만 이라는 안하무인격의 아이들은 더 이상 창의적이고 민주시민의식을 요구하는 새시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엄하게 규제하고 자애롭게 품어주어야
이제 부모들은 정말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봐야 한다. 진정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위하는 것인가를. 옛날처럼 아이들을 줄줄이 많이 낳아, 관심을 분산해 과잉충족으로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는 것을 막아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나나 둘밖에 없는 금쪽 같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무조건 다 수용하는 과잉보호가 바람직한 양육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부모들은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를 자행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디까지 통제를 해야하고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그 적정 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까지 제재하면 우리 얘가 기가 죽지 않을까? 우리 얘가 어떤 아이인데...
자녀의 기를 죽이지 않으면서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기란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노심초사 바라보는 부모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새시대를 살아가야 할 주인공이고, 새시대는 함께 살아갈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규제할 것은 엄하게 규제하고 또 자애롭게 품어주어야 할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평범한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지혜를 한껏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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