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2 월요일
혜림이가 할머니를 도와 콩을 베다가 발을 다친 모양이다. 그 상황이 그려지니 마음이 다소 착잡하다. 집안일 돕다 사고가 났으니
말이다. 아무렇지않게 대답하는 혜림일 보니 내가 더 위로받는 듯하다. 그래도 그냥 마음이 안좋다. 좀 무겁다. 빨리 낫길 바랄
뿐...
주말을 보낸 다음 만나면 왠지 더 새롭다. 뭘하고 보냈나 궁금하고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낯선 설레임이 좋다. 집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일상은 주말이라고 그렇게 큰 변화가 없다. 그래도 물어보고 뭐하고 놀았나 하면 그냥 놀았어요 한다. 싱겁게
끝난다. 책 “쇠를 먹는 불가사리”를 같이 읽는다. 한 아주머니가 전쟁에서 죽은 남편 때문에 쇠를 먹는 밥풀인형을 만드는데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고 슬프다. 아이들이 불가사리가 되어 같이 쇠를 찾는다. 은근히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다. 아이들에게 평화를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아이들도 불가사리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다시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음에 짠하게 남는다. 이런 그림책이 아이들
가슴속에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내가 좋다고 아이들에게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늘 영혼의 성장을 돕는 그림책을 고르느라
고민하면서 보여주는 것이니 나도 욕심이 좀 난다. 아무튼 천천히 가야할 터이다. 내가 먼저 꾸준히 가치있는 삶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2007. 11.13 화요일
여태 모았던 나뭇잎들로 또 모빌을 만든다. 이번엔 나뭇가지도 커다란 걸 주워와서 거기에 걸어둔다. 바늘로 실을 꿰어 하나씩 마음에 드는 것들로 엮어서 나름대로 순서를 정한다.
그 하나 하나 엮어가는 동안 새겨지는 그 아이만의 숨결을 느낀다. 바늘을 잡는 순간 모두 장인이 된 듯하다. 나는 가끔가다
바느질을 하는데 그 순간이 너무 좋다. 명상이 따로 없다. 순간 몰입하면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나를 잊는다. 그냥
빠져든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어떤 행위에, 어떤 대상에 깊게 들어가보는 것은 나름대로 정화작용을 한다. 비워내기다. 감정도
생각도 사라진다. 그러면 한결 숨이 고르게 된다. 바늘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실을 넣었을때 아이가 감탄을 한다.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본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는다.
그 자신감을 기르는게 바느질하는 또 하나의 목표다. 아이 얼굴이 빛나는 걸 본다. 너무 이쁘다. 스스로가 대견스러워한다. 작은 일이지만 혼자 힘으로 한다는 사실이 기쁜거다.
그 기쁨을 아이들과 늘 맛보고 싶다. 그래서 저 혼자 하라고 부추긴다. 힘들지만 해낸다.
그렇게 하나 하나 이루면서 독립하는 걸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그게 어른이 되는 길이기에...
2007.11.14 수요일
책 “새 친구가 이사왔어요”를 같이 본다. 5층집 빈 꼭대기방에 세를 놓으니 여러 동물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한결같이 다른 층에
사는 동물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트집을 놓으면서 좀처럼 이사를 오지않는다. 그러다가 비둘기는 집이 마음에 안들지만 이웃들이 마음에
든다며 이사를 온다. 비둘기는 다른 동물들이 흉을 본 것들을 모두 좋게 생각한다. 그 마음씨가 좋다. 남들이 보기엔 단점인데
장점으로 보니 말이다. 사람이 갖는 감정 중 혐오감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데 이런 편견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이 그림책은
그래서 훌륭하다. 요즘 다른 사람, 특히 겉보기에 장애인에 대해서 배우는 중이어서 도움이 된다. 겉으로 보기에 나와 다르다고
상대안하고 아예 부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친구가 되기 어렵다. 왕따 역시 편견의 증상이다. 왕따하는 아이나
당하는 아이나 서로 피해다. 왜냐하면 가까워지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서로를 편견없이 대한다면 차별로 인한 피해나 이념과
종교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터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존중이 시작된다.
이 책은 나에게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준다. 그래서 고맙다....
지난 주에 이어 눈감고 다녀보기를 재미팡팡 방에서 한다. 두사람씩 하다가 나중엔 혼자서 방의 상을 돌아오는거다. 혼자하니 더
긴장되는지 아주 진지하고 다른 아이들도 조용히 지켜본다. 상에 부딪히기도 하면서 다 돌아오면 휴 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면서
뿌듯해한다.
안보이는 사람들의 느낌에 아이들은 무섭기도 재밌기도 하단다. 느낌은 자유고 다만 그 상황을 느껴보게 하고 혹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은 거라고 이야기해준다. 다른 상황에 놓여보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수있을거라는
기대를 갖고...
2007.11. 15 목요일
낙엽이 수북이 쌓인 언덕으로 가다. 서로 낙엽뿌리기, 뒹굴기, 낙엽들이 고기가 되어 낙시질하기 .. 마구 떠오르는대로 아이들과
엉켜서 논다. 내키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아이들, 벌렁 드러누우니 아이들도 따라 눕는다. 폭신한 나뭇잎위에 있으니 어릴때 시골
큰집 동네에서 숨박꼭질할 때 숨었던 짚단속같이 아늑하다. 따뜻해서 졸음이 오던 기억.. 가만히 하늘을 본다. 구름들이 흘러가는
파아란 가을 하늘이 투명하다. 아이들과 구름 모양도 알아맞히고 어디로 가는지 지켜본다. 평화롭다. 아이들도 그런지 다들
차분하다. 한동안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아이들과 마법침대를 탄 것처럼 떠난다. 책 “마법침대”를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자기 상상대로 가는 꿈을 우린 날마다 꾼다. 꿈꾸면서 그 환상에 잠시나마 행복하다.
가끔 이렇게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떠날 수있다.....
2007.11.16 금요일
지난 달력으로 각자 종이접기를 하다 모두 수리검(표창)을 만들다. 나도 처음이라 책보고 먼저 연습해보고 가르쳐주는거다. 유치원
아이들과 1학년 남자아이들이 둥글게 모였다. 여자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짬짬이 배운 덕에 다른 걸 접는다. 조금 까다로우니 성수가
막 성질을 낸다. 해달라고 떼쓰지만 내버려둔다. 그냥 천천히 잘 보라고 한다. 재우는 딴짓하다 뒷북친다. 그래도 제법 빨리 따라
배운다. 다들 끈기있게 하다 만들어지니 얼굴들이 환하다. 거기에 자기나름대로 색칠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표창이 된다. 신나서
마구 던지니 운동장에 나가 날리기를 한다. 종이지만 두꺼워 꽤 멀리 나간다. 이렇게 놀이감을 하나씩 만들어가려한다. 자기가 만든
거라 더 애정도 있어 소중히 다룬다.
2007.11.19 월요일
새로운 시작의 날이라 새노래 ‘딱새’를 같이 배우고 부르다. 정말 그 노랫말처험 딱새가 집에 왔다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고
다시 날아가버린 적이 있다. 그래서 더욱 친밀하게 느낀다. 아이들이 본걸 적어낸 시로 만든거라 그런지 아이의 느낌이 돋보이는
노래다. 우리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면서 금방 따라부른다. 아마 같은 정서를 지녔기에 가능하리다 본다. 또래문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아이다움(?)이 사라지는 요즘 이런 노래가 고맙다.
2007.11.20화요일
“내게는 소리를 듣지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를 같이 보다. 일본인 작가 특유의 섬세한 그림과 이야기가 잔잔하다. 같은
동양아이의 그림이라 더욱 쉽게 다가온다. 일본이 서양문물을 빨리 받은 탓인지 다양한 그림책들이 많다. 특히 장애라든가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이 우세하다. 대부분 애니메이션들도 그렇다. 좋은 건 배워야한다. 배워서 고루 나누자.
2007.11.21 수요일
장애체험을 계속한다. 그림을 왼손으로 그려본다. 호기심에 열심히 그린다. 새참시간엔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해본다. 그러면서
익숙함과 불편함, 또 있어서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부족한 걸 탓하기보다 지금 자기가 가진 것에 고마워하기... 늘 욕심이
문제다.
2007.11.22 목요일
소리장애체험을 하다. 귀를 막고서 들릴때와 안들릴때를 느껴본다. 답답하거나 무섭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숨쉬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들리는 사람 입장에서 소통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 귀가 고맙다.
2007.11.23 금요일
바깥에서 낙엽언덕을 휘젓고 다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갑자기 물고기들이 된 듯 나뭇가지로 낚시를 한다. 그리고 둘레 웅덩이를
뛰어넘기 대회를 한다. 누가 더 멀리 가나 힘차게 높이 오르는 아이들.. 가을이 주는 놀이감에 우린 푹 빠졌다. 나무는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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