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출신 이달의 독립운동가-박두업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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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선영 | 등록일 | 10.04.06 | 조회수 | 104 | ||||||
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4월 16일 영동군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서 김승림(金升林)·정화중(鄭化中)·여규병(呂圭炳)·여구일(呂九一)·여중선(呂中仙)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제작하는 등 거사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때마침 영동에서 무주(茂朱)간 도로건설을 위해 부역 나온 군중 수백명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기를 권하고 그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계속하여 학산주재소를 습격, 기물을 파괴하는 등 활동하였으며 일인들이 가식(假植)한 뽕나무 묘목에 불을 지르고 이를 저지하는 일경에 맞서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계속하다가 일경의 무차별 총격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피체되었다. 이해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청주보훈지청․충주보훈지청․광복회 충북도지부는 선생의 탄신 115주년을 기념하여 2010년 4월‘우리고장 출신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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