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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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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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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식 등록일 11.09.16 조회수 297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서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

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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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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