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괴산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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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노은초 | 등록일 | 11.12.05 | 조회수 | 132 |
충주보훈지청 ( 지청장 허부성 ) 에서는 우리고장의 현충시설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나라사랑의 교육장으로 널리 활용하고자 매월 이달의 현충시설을 선정하여 홍보하고 있다 . 이에 12 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괴산지역의 「 괴산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 를 선정하였다 .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 위치한 괴산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는 의병장 한봉수 ( 韓鳳洙 ) 를 주축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
한봉수 선생은 1883 년 4 월 18 일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1907 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 동년 8 월에 의병장 김규환 ( 金奎煥 ) 의진 ( 義陣 ) 에 가담하여 일군 수비대 및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맹활약하였다 . 가을에는 해산 군인 100 여 명을 규합하여 왜적구축대 ( 倭敵驅逐隊 ) 를 조직하였으며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
이후 오근장 ( 梧根場 ) 부근에서 일본 헌병대위 도기선치 ( 島崎善治 ) 를 사살하고 강원도로 수송되는 세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일본군과 33 회의 격전을 치렀다 .
1919 년에는 고종황제의 국장에 즈음하여 홍명희 ․ 손병희 등과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였으며 ,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3 월 7 일 청주의 서문장터 입구 마차 위에서 선언서를 살포하고 장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주도하였고 , 4 월 1 일에는 북일면 세교리 구시장에서 면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 다음 날에 다시 내수 보통학교 학생 80 여 명과 같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1919 년 5 월 6 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 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괴산군에서는 국권회복과 민족의 정통성을 이으려는 선열의 우국충정을 길이 전하고자 1984 년에 높이 3m, 너비 2.5m 규모의 유적비를 건립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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