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기회의 중요함
초등학생 아이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학생은 어른들이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글을 읽고 핵심을 명확히 파악해내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아주 쉬운 문장을 읽고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창의적인 생각을 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항상 모범적인 답만을 생각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논술을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이 바로 다양한 학생들의 특성과 수준에 맞게 적절히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본적인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논술을 배우기 앞서 진단평가를 실시하다가 명수(가명)라는 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술 시험을 보기 앞서 잠깐 쓰기 시험 답안지를 보고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질문과 답이 완전히 따로 놀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질문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구술 시험을 실시한 후 명수의 수준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는데, 명수는 질문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일단 등록을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뒤쳐졌습니다. 다른 학생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질문에 맞는 답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명수를 위해서 다른 학생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최대한 명수를 배려했지만 수업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명수가 소외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한 달이 지난 뒤에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계속 가르쳐야 하는지, 포기해야 하는지 망설여졌습니다.
명수와 비슷한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교재를 만들까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읽기와 쓰기 교육을 차분히 시키다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명수에 맞는 교재를 준비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저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명수는 항상 토론에서 소외가 되었습니다. 명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고 제가 물어보는 말에 간신히 대답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명수의 말문이 열렸습니다. 어색하긴 했지만 토론에 참여한 것입니다. 입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놀라움에 명수를 다시 보았습니다. 아니 좌절하던 마음에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토론 수업이 왜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자꾸 생각하게 하는 것, 자꾸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 다른 친구들과 토론을 하는 것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논리력 발달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깨달았습니다. 명수에게 부족한 것은 글쓰기나 읽기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 찾아볼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밖으로 내보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무작정 읽게 하고, 글을 계속해서 쓰게 하고, 문법을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명수 뿐 아니었습니다. 비교적 학습 능력이 우수한 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을 뿐인데 글이 몰라보게 달라진 학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에 자기 생각이 뚜렷하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근거와 논리력이 동원되었습니다. 글쓰기 훈련이 필요 없었습니다. 단지 무엇을 쓸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자주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합니다. 생각의 기회만 열어줬을 뿐인데 아이들의 능력은 몰라보게 다라졌습니다. 문제는 항상 가르치는 사람,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직접 가르치는 것은 결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기다리는 것, 오직 그것만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천재적인 능력이 감춰져 있다고 전 믿습니다.
출처 : <학림논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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