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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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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을 실천한 역사적 인물
작성자 성복련 등록일 15.05.13 조회수 156

청렴을 실천한 역사적 인물

청파(靑坡) 기건

 

기건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세종 때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발탁되어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연안군수, 제주목사, 집의, 형조참의, 이조참의, 전라도관찰사, 호조참판, 개성부유수, 판중추원사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성품이 맑고 검소하고 고지식하여 세세한 행동도 반드시 조심하며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연안(延安)군수였을 때 고을 사람들이 붕어를 잡아 임금에게 바치는 것 때문에 힘들게 그물질하는 것을 보고 재임하는 3년 동안 먹지를 않고 아예 술도 마시지 않았다. 제주목사였을 때는 백성들이 전복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힘들어하니, 역시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

제주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산골짜기에 버리는 것이 풍속이었는데 기건이 제주목사로 가서 장사 지내도록 가르쳤다. 하루는 꿈에 3백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뜰아래서 머리를 조아리며 “공의 은혜로 우리의 해골이 맨땅에 나뒹구는 것을 면하게 되었습니다.”고 사례하였다 한다.

제주도는 바다 가운데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나병(癩病)에 많이 걸려 부모나 처자식이라도 병에 걸리면 서로 점염될까 두려워 사람 없는 땅으로 옮겨서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기건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바닷가의 바위 밑에서 나는 신음소리를 듣고 살펴보니 환자가 있었다. 환자를 방치하는 연유를 알고 나서는 질병치료소를 설치하고 나환자 1백여 명을 모아 고삼원(苦蔘元)을 먹이고 바닷물로 목욕을 시켜서 거의 다 낫게 하였다. 이러한 선정으로 그가 교체되어 돌아갈 때 질병을 고친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서로 울면서 보냈다.

 

한성부윤이 되었는데 며칠 만에 대사헌으로 가서 당시 국왕의 유약함을 기화로 권력을 농단하던 여러 신하들을 탄핵하였다. 먼저 승정원 승지들의 권력 농단, 특히 도승지 강맹경의 탐학을 탄핵하고 공론의 보장을 요구했으며 “대신들은 겸직하지 말도록 하고 정부는 대신들의 자손에게 특례로 벼슬을 주고 있으니 이것도 금하도록 하여야 합니다.”라며 당시의 실권자인 황보인, 김종서의 횡포를 논박하였다. 그 해에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평안도관찰사로 나갔고 1455년 판한성부사가 되었다가 대사헌을 역임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있었다.

 

1460년(세조 6)에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맑고 검소하고 마음이 곧고 굳으며 작은 행실도 반드시 조심하였으며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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