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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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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주 훈화자료- 충무공 탄신일(4.28)
작성자 이정원 등록일 14.04.28 조회수 163

충무공 탄신일

 

  임진왜란 때의 명장으로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로서 선조 9년(1576)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때에 수군 통제사가 되어 거북선을 가지고 왜적을 한산도, 안골포, 부산포 등지에서 크게 물리친 호국의 영웅이다. 아산의 현충사를 성역화하여 온 국민으로 하여금 애국정신의 모범으로 추앙하도록 하고 있다.

8.15 해방 이후 이충무공 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매년 4월 28일 탄신제전을 거행해 오던 중 정부의 뜻에 따라 1966년 4월 현충사 경내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지고, 1967년 1월 16일 문교부령 제 179호로서 4월 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공포하였다. 이것은 1545년 4월 28일 (당시 음력 3월 8일에 대한 양력 탄신일) 새벽이 서울 건천동에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 나이 48세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생에 가장 화려하고 광채 있는 기간이었으니, 공은 실로 놀라운 승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수십 년간의 긴 세월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짧은 시간도 아껴 가면서 노력하고 준비하여 왔던 것이다.

공이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이고 준비하는 사람이었던가는 ‘난중일기’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바 정밀하고 부단한 각 방면의 노력이 쌓여 최후의 전장(노량해전)의 실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은 싸움에 용감히 나아가 물러남이 없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었으나, 인정에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인간애의 번뇌함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약한 아들이요 아비였다. 부친의 임종을 보지 못한 철천지한과 모친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이 난중일기에 수없이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부모를 여윈 조카들을 친자식보다도 더 보호하고 양육한 사랑이라든지, 친구를 만나 기뻐하고 헤어질 때 슬퍼하는 정이라든지, 부하에 대한 지극한 애정, 전쟁으로 신음하는 동족을 따듯이 보살핀 애민휼족의 정은 ‘성웅 충무공’ 에 앞서 ‘이간 충무공’ 이 얼마나 우리에게 더 가깝고 친밀한지 지 알 수 있다.

남의 생명을 아낄 줄 아는 충무공, 순정의 화신인 충무공이라야만 비로소 민족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민족의 재단에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충무공을 사모함에 있어 단순히 그의 기적과 신비를 감탄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그의 순결하고 뜨거운 인간성과 성실한 노력을 흠모하고 추앙하며 이를 본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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